어느 새 골절로 뼈가 뽀가진지 52일이나 지나버렸습니다. 20일 이후부터는 거의 비슷한 양상으로 환부는 아프지 않지만 그냥 가끔 발이 찌릿찌릿하거나 저린 정도이기만 했는데요. 맨날 목발 짚고 다니느라 오른발을 사용할 일이 뭐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다친 발이 부어있다가 가라앉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52일 되는 3/31 오늘, 보조장치와 목발을 떼어내는 날이 왔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때라 설레는 마음으로 병원에 갔더니 의사 쌤이 이제 안 아프시죠? 하면서 갑자기 발가락을 마사지 하는데... 환부는 안 아픈데 왜 새끼 발가락이 아픈 건지??? 아무튼 큰 문제는 없어보여서 바로 발목 밴드만 받고 장치와 목발을 떼어내게 됐습니다.
무려 약 50일 만에 첫 걸음이라 그런지 불안한 마음 반으로 바로 발걸음을 떼어봤는데. 이거 진짜 그냥 발을 딛자마자 발바닥을 바늘 천개가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이 올라옵니다. 뜨아악 하면서 걷긴 걸었는데 자세를 아무리 봐도 이건 그냥 틀려먹었습니다. 집에서 조심조심 한 10여 분 잠깐 걷고 앉아서 좀 쉬었더니 지금은 발이 아주 땡땡 부었네요 ㅋㅋㅋㅋ
운동한답시고 가만 있는 강아지까지 들고 걸어봤습니다.
일단 이거 10분 이상 걸으면 발 땡땡 엔딩이라 아마 당분간은 걷고 온찜질하고 다시 걷고 이래야 할 것 같네요. 이 지경이어서 언제 제대로 걸을 수 있을런지 한숨이 나오지만 일단은 열심히 다시 걸어보렵니다.
역시 골절은 시간이 다 해결해준다!!!!
골절 환우 분들 파이팅하십쇼ㅠ 죽어라 참고 인내하며 시간을 보냈더니 드디어 제게도 두 발로 땅을 디딜 수 있는 시간이 왔습니다. 이제 매일매일 집 앞 카페까지 걸어보면서 훈련 해야겠어요. 5분 거리가 아마 한 20분 걸릴 것 같지만.
수술 이후로는 별다른 일이 없습니다. 깁스를 대신할 독특한 보조장치를 달고 수술 부위만 소독하며 버티는 삶입니다. 사실 수술 직후 첫 드레싱을 했을 때, 살을 짼 부위가 워낙에 따가워서 뭐가 잘못된 게 아닌가 엄청나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기우였음. 맨살을 짼 거니까 아픈 게 당연하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살을 째본 일이 그게 처음이라 몰랐는데...
요런 신기한 보조장치를 달고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거 비급여 33만원짜리 외제 장치래요. 정확한 명칭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여하간 굉장히 비쌈. 저는 중족골 5번 기저부 골절로 원래 회복이 잘 되고 빠르게 골유합이 되는 부위라, 수술을 갈긴 다음부터는 통깁스를 계속 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때문에 잘 때에는 이 보조장치를 벗고 그냥 맨발에 얼음찜질을 해가며 자기도 했어요. 소독은 3일 간격으로 계속되며 병원에 가서 의사 쌤의 진찰을 곁들여 받기 시작합니다.
수술 후 첫 소독 방문을 마친 다음에는 환부 염증 없이 잘 아물고 있으니 아예 집에서 자체 소독을 진행하라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집에서 제가 알아서 소독했을 정도로 별 탈 없이 잘 지나갔습니다. 아참 골절 환자 분들 샤워할 때 어떻게들 하시나요? 전 사실 처음 반깁스 했을 때부터... 상처에 물 들어가면 안된대서... 그 뭐시기냐 비닐봉지를 발에 둘둘 두르고 테이프로 묶은 다음 그 상태로 샤워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불편하지만 그렇게라도 안 하면 못 버티겠더라구요. 아무튼 이 보조장치가 참 편한 게 샤워할 때는 그냥 벗으면 되니까. 마찬가지로 맨발에 비닐봉지 둘둘 감고 계속 샤워했습니다.
수술 2주 후에는 살 짼 부위의 실밥 뽑는 걸 시작하는데, 전 사실 마취는 안 무서운데 이 실밥 뽑는 게 무서워요. 가위랑 핀셋으로 살 짼 부분 실을 또각또각 잘라대며 뽑기 시작하는데, 실밥 뜯을 때 상처 부위가 싸하고 따끔따금한 것이 크게 아픈 건 아닌데 기분이 나쁘게 쏘아대거든요.
아무튼 이 보조장치 + 목발의 삶은 한달 이상 계속될 예정이었습니다... 발을 다치고 나니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더라구요. 일단 두 손을 다 목발을 짚어야 하기 때문에 물건을 스스로 들지 못하고, 물 같은 건 절대 떠오지 못합니다. 실제로 골절 초기 때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어서 제가 커피 타고 혼자 떠오려다가 목발 짚고 출렁이는 바람에 바닥에 커피를 죄다 쏟은 적이 있어요.
첫 병원에서는 중족골 5번 부위가 부러졌고, 저의 건강함과 젊음으로 인해 수술하지 않아도 붙을 것 같다는 진단을 받기는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부모님이 자주 이용하시는 병원으로 옮겨 바로 재진단, 똑같은 진단을 받았으나 이번엔 수술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게 됩니다.
운동을 하다 다친 만큼 활동적인 타입으로 보이니 하는 제안이라 하더라구요. 비수술의 경우 꼼짝없이 6주동안 통깁스를 하고 묶여 살아야 하지만 수술을 하게 되면 탈부착이 가능한 보조장치를 하고 비교적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첫 병원에서 반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은지 고작 하루, 이미 깁스에 넌덜머리가 나버린 저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 수술 제안에 콜을 외칩니다. 그렇게 저의 머저리 인생이 시작되었죠......... 살면서 코피 한 번 흘려본 적 없었고, 심하게 아파본 일이 없어 수술이니 뭐니 겪어본 적이 없었던 사람이라 수술을 아주 만만하게 생각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수술은 아주 빠르게 5일 뒤로 일정이 잡혔습니다. 2월 8일에 골절하고 바로 2월 16일에 수술을 갈기게 된 것이죠. 들어보니 골절 후 최대 2주 안에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이 있어 그냥 빠르게 수술을 갈기기로 했습니다. 부러진 골절 부위에 나사를 삽입해 뼈가 틀어지지 않도록 방지하고 뼈가 바르게 붙을 수 있도록 돕는 수술이었습니다.
수술 때문에 전날 12시부터 물도 음식도 한입 대지 못한 채로 강제 금식을 유지합니다. 밥 굶는 거야 별 문제가 되지 않는데 물 못 마시는 게 너무 괴로워서 사실 저... 아침 7시에 물 한 모금 마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러지 마세요 물 마시면 마취 중 역류하는 위험도 있다고는 들었는데 저는 그냥 목이 타는 게 너무 괴로워서 한 입 했습니다 아시겠죠 이러시면 안됩니다.
아무튼 간에 생전 처음 병원 입원이라 이 링거? 이것도 처음 맞아보고. 아니 이거 너무 불편해서 뒤질 뻔 했어요. 입원을 2박 3일 했는데 내가 뭘 잘못했는지 계속 피가 역류해서 나중엔 링거 뺐다가 다시 꽂기도 하고 아주 별 생쇼를 다 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수술 당일, 오후 2시로 수술 일정이 잡혀 아무 걱정 없이 수술실로 들어가 수면 + 하반신 마취 콤보를 맞아 쿨쿨 잠만 자고 일어난 저. 1시간 50분 정도의 수술이 끝날 무렵에야 눈을 뜨고 고대로 병실로 옮겨졌는데. 마취 덕에 당연히 감각은 없었고 팔만 움직이는 터라 멍하니 누워 폰만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분명 마취해서 감각이 없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환부가 후끈후끈하고 뭔가 지끈거리는 느낌이 있는 거예요.
그때 직감했죠. ㅈ댔다 이건 마취 풀리면 뒤지는 각이다.
호달달 떨며 간호사 선생님께 물어봅니다. 마취 언제 다 풀리나요? 8시간 정도 후에 풀려요~
속으로 비명을 질러가며 기도 했습니다. 제발 아프지 마라 진짜로 아프지 마라 난 살면서 아파본 일이 없는 사람이다 내 몸아 믿는다 힘내!
그러나, 수술 초보자의 헛된 희망은 바로 무너지고 맙니다. 오후 6시 정도부터 살살 마취가 풀려가기 시작합니다. 점점 느껴지는 수상쩍은 고통. 이건 말로 형용하기 힘든 무언가입니다. 6시부터 아, 뭔가 이상하다, 무통주사가 안 들어오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건 이상하다,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웃기는 개소리입니다 이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더니 오후 10시 반 무렵부터 정점을 찍기 시작합니다.
나사를 박은 부위, 뼛속에서부터 수상쩍은 열기가 번집니다. 발 속에 불이 난 것처럼 뜨거워 화끈화끈한 화기와 동시에 무자비할 정도로 끔찍한 욱신거림이 하모니를 일으키며 커져갑니다. 환부만 아픈 게 아니라 오른발 전체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더니 발이 너무 뜨거워서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깁스를 다시 한 환부 위에 쉴 새 없이 얼음 찜찔을 해댔는데도 이 화기는 절대 가라앉지 않습니다.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통증에 아파서 끙끙대다가 새벽 1시부터는 아예 무통주사 버튼을 10분에 한 번씩 눌러댔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옆자리에서 병간호 중이던 엄마가 이 끙끙대는 소리에 한숨도 못 잤다고 하더라구요 ㅋㅋㅋㅋ 잠 깨우기 싫어서 소리없이 무통주사 버튼만 눌러댔는데 그 소리도 요란했나 봅니다.
아파서 잠은 당연히 못 자고, 계속 발버둥 치다 결국 2시 반 정도에 진통제를 한대 맞았습니다. 근데 전혀 아무 소용 없음 ㅅㄱ요. 진통제고 머고 효과도 못 느낀 채 결국 속으로 비명을 질러댔는데 이게 참 신기하게도 새벽 4시 반을 넘어가니까 통증이 살짝 가라앉더라구요. 마취 완전히 깨고 밤 10시 반부터 새벽 4시 반까지니까 총 6시간이 정말 이 고통의 피크였네요. 그 전까지가 10의 고통이었다고 하면 새벽 4시 반부터는 한 4 정도로 고통이 가라앉았습니다. 물론 그래도 아픈 건 변함이 없습니다.
아무튼 혹시라도 저랑 똑같이 중족골 골절에 나사 박는 수술하신 분들. 마취 다 풀리고나서도 6시간 정도 참으면 새벽엔 고통이 좀 가라앉으니까 희망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저의 경험이 이렇고, 제 주변 지인들도 새벽이나 다음날 아침 정도엔 다들 어느 정도 통증이 가라앉는다고들 하더라구요 힘내요.
수술 다음날부터는 그럭저럭 견딜 법한 고통이니까 대충 무통주사 맞아가며 뻐겼습니다. 솔직히 여전히 아프긴 했는데 첫날의 악몽이 워낙에 지독해서 아 이 정도는 껌이지 하고 참게 된 듯.
둘쨋날 밤부터는 팔 쪽에 꽂은 링거에서 자꾸 피가 역류하고, 주사 바늘 꽂은 부위가 통으로 부어서 그냥 새벽에 아예 링거를 빼버렸습니다. 덕분에 셋째날 새벽부터는 무통주사 없이 쌩으로 버텼는데 그럭저럭 버틸만 했어요.
퇴원 전 첫 드레싱 당시의 모습. 혹사 당한 내 발이 불쌍해 눈물이 핑 돌 지경입니다. 나중에 의사 쌤이 워낙에 뼈가 튼튼한 강골이라 웬만큼 넘어져서는 절대 부러지지 않을 것 같던데 도대체 어떻게 넘어지신 거냐고 묻더라구요. ㅋㅋㅋㅋ 다이노 하다가 넘어졌어요 선생님... 클라이밍이 이렇게 위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