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담2019. 10. 29. 16:01

청사자 막 깨서 생생할 때 쓰는 후기(당연하지만 스포 있음)

 

저 욕해도 되죠?

 

 

첫째로 흑수리, 둘째로 금사슴을 클리어 했거든요. 클로드나 에델이나 둘 다 사실 마이 유니트(이하 벨레스) 대하는 태도가 웃어른 공경하는 유교식 상하관계는 결코 아닙니다만. 이 둘은 최소한 벨레스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있습니다. 평등한 라인에 섰다 해서 벨레스를 무시하거나 등한시 하는 게 아니라 배울 게 있는 사람, 가치 있는 사람으로서 귀이 여기고 존중 하거든요.

 

그런데 왕자님은 그게 없어요. 1부 시작부터 2부 끝까지 벨레스를 선생님으로서 존중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한명의 개인으로서 바라보고 인정하지도 않아요. 수 틀리면 바로 면전에 미쳤냐, 꺼져라, 비켜라 같은 말만 툴툴 내뱉으며 결과적으로 제 감정 상할 때마다 폭언을 일삼습니다. 이게 뭐게요? 감정 쓰레기통이지 뭐야. 제 부하도 아니고 선생님을 사람으로서 인정하고 존중하는 최소한의 자세도 없이 내내 미쳐서 앞뒤 안 가리고 방방 뛰는데 도대체 어떻게 얘를 대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전 받는만큼 돌려주는 거 좋아하니까 얘가 벨레스를 제국의 개 취급한 것처럼 그냥 광견 취급할까봐요.

 

그런 주제에 막상 2부 중반쯤 접어서는 벨레스의 인정과 보호(+로드릭의 사망)를 토대로 스스로의 광기로부터 벗어나 제정신을 찾습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더 미쳐가기 시작합니다. 원래 정신놓고 달리던 애니까 또라이처럼 굴 때는 그래, 너도 그럴 수 있지. 넌 지금 매우 심각한 정병을 앓고 있으니까 ㅇㅋ ㅇㅈ. 하고 넘어갔다고 쳐요. 제정신을 찾은 다음 하는 행동과 말이 아주 대단합니다. 여전히 머리가 꽃밭에 가있는 것처럼 반쯤 꿈꾸다 온 소리를 가감없이 내뱉는데, 벨레스는 또 옆에서 그래그래 니 말이 다 옳다, 하고 맞장구를 치고 있습니다. 아주 환장할 노릇입니다. 제가 선생님이었으면 대갈빡 뒷통수 한대 후린 다음 “정신 차렸니? 맞아뒤지기 싫으면 눈 똑바로 뜨고 나한테 사과부터 하고 앞으로 니 조상처럼 모시렴.” 했을 것임.

 

물론 디미도 사과는 합니다, 하는데…… 이후의 취급이 변하나요? 여전히 벨레스를 제 선생보다는 걍 옆에서 대가없이 나 도와주는 성녀1 취급을 하던데요. 빡쳐요 벨레스가 왜 보모처럼 옆에서 따뜻한 눈으로 고개 끄덕이고 잇는지 모르겠어. 잿빛 악마 어디갔냐.

 

얘는 그리고 1부, 2부 내내 자기를 약자의 입장에 대입해서 자연스럽게 그들 입장을 대변하는데. 어불성설이잖아요. 왕국의 후계자, 왕자인 데다가, 주변에는 충성스럽다 못해 제가 죽으라고 하면 당장 나가 죽을 수도 있는 충신들이 즐비하고. 자기를 챙겨줄 수 있는 든든한 어른에,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마저 있어. 안팎으로 거의 모든 주변인들에게 존경과 공경을 받는데다가 그들 모두가 디미의 과거 피해를 동정하면서 챙겨주기까지 하는데.

 

얘는 스스로 지 불행에 심취해서 자기 파괴를 반복하는 것뿐이지 정녕 약자의 입장이 아니란 말이죠. 삼반장 중 인적, 상황적 인프라가 가장 충만한 애인데 그런 애가 약자를 어떻게 대변해요 장난해?

 

정말 약자는 멀리 갈 필요도 없어요.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었을 정도로 가난했던 애쉬, 문장을 볼모로 가축처럼 입양된 후 쓸모가 다하자 버려진 메르세데스, 문장 때문에 자기 의사와 꿈은 채 펼쳐보지도 못하고 가문에 의해 내내 물건처럼 휘둘리는 잉그리트. 옆 반도 보세요. 마을 전체의 투자로 겨우 사관학교에 들어온 후 자기는 큰 빚을 지고있다고, 그들 모두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용병이 되어 돈을 벌어야 한다는 레오니. 힘이 없어 가족의 원수가 눈 앞에 있는데도 이를 책망하거나 탓하지 못한 채 그저 스스로를 삭이다가 마침내는 체념한 라파엘.

 

태생적으로 손에 쥐고 난 것이 너무도 많은데다 모두의 진심 어린 케어를 받는 우리 왕자님은 무슨 짓을 해도 약자가 될 수 없잖아요. 따라서 약자의 입장을 대변할 수도 없고, 디미가 주구장창 외치는 ‘인간의 믿음, 우리 모두가 손 잡고 같이 노력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는 이상은 결국 많은 것을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의 현실을 모른 채 속삭이는 기만일 뿐이거든요. 더군다나 얘는 몽상가처럼 자기 꿈을 내뱉는 건 잘하지만 이를 현실로 이룩할 수 있는 실체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은 뭣 하나 내놓지를 않아요. 말만 번지르르한 정치인들과 다를 바가 없는 거죠.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나는 약자, 나는 그들의 편에서 싸우는 사람, 나는 모든 사람을 위한다. 나는 사회의 수호자다. 이런 식으로 생각할 것을 떠올리면 복장이 터지는 거죠. 아.

 

아니 씨 디미 얘기하다가 날 새겠네.

 

 

아무튼… 저는 청사자 말미 쯤의 에델 & 디미 + 벨레스의 삼자 회담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에델은 정말 현실적이고 언제나 일관적이고, 자기 스스로를 잘 파악하고 있어. 얘는 항상 모든 루트에서 제가 하는 일의 결과와 그 대가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요. 그 모든 걸 감내하고 있고 또 스스로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있기 때문에 말과 행동에 주저함이 없죠.

 

가치관의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이렇게 단단하고 이미 자기 완성이 된 사람과 디미 같은 불안정한 몽상가가 서로의 이상을 두고 대담을 한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요. 시나리오 쓰다가 혹시 졸았을까요? 서로 다른 가치관과 이념의 대립은 물론 생산적이고 즐거운 이야깃거리이지만 한 명의 이상이 말 그대로 몽상에 불과할 따름이면 회담은 커녕 대화마저 성사되질 않죠. 캐릭터 디자인에 구멍이 좀 난 것 같아. 해당 씬에서 디미가 정말 초라해보일 지경이더군요. 저는… 그냥… 말을 삼키겠습니다.

 

마지막 씬에서도 에델과 디미의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져서 재밌더군요. 디미는 마침내 에델이 상징하는 과거와 비극을 제 손으로 마무리하고 등진 채 새로운 빛인 현재를 향해 걸어갑니다. 2부 엔딩에 와서야 겨우 과거를 정리하고 현재를 맞이하게 된 거죠. 그런데 에델은 아니거든요. 이미 1부 시작도 전부터 제 과거를 모두 삼키고 그보다 더 먼 미래를 위해 현재마저 넘기고 달리던 친구거든요. 이게 어찌나 대비되는지. 두 사람 성장의 차이가 정말 확연해서 재밌는 것 같아요. 에델은 역시 에델이야. 미래를 열어가라고 준 단검을 나는 니가 그릴 미래에 있을 자리가 없다, 하고 아주 분명하게 되돌려주는데. 크 진짜 마지막에 짓는 표정 보고 오만 감상이 쏟아지는데 그냥 주섬주섬 주워삼키게 되던.  

 

ㅍㅎ 도 진짜 좋았어요. 신념을 위해, 모든 인간을 위해 그렇게 귀이 여기던 인간성마저 스스로 포기하고 최후의 수단으로 자기 자신을 던지는 에델이라니. 스스로마저 장작으로 삼아 세상을 위해 불을 지피는 이 모습… 정말 다크소울의 장작의 왕을 보는 기분이었어요.

 

 

아무튼 2부 하는 내내 다 때려치고 펠릭스 손 잡고 제국으로 귀순하고 싶었어요. 불쌍한 펠릭스 넌 왕국에 있을 애는 아닌 거 같은데 도대체 왜 여기서 나랑 같이 고통 받는 거니? 아무튼 청사자 하는 내내 머리가 꽃밭에서 뒹구는 느낌이었습니다. 모두가 다 같이 손 잡고 잘 살면 된다는 이상에 진심으로 공감하기엔 난 너무 삭아서 안되겠어. 제가 10대였으면 진심으로 청사자반 좋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지금은 아님.  

 

청사자는 정말 까고싶은 부분이 존나게 많은데 일일이 나열하다가 제가 먼저 늙어뒤질 거 같으니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짚고 끝낼게요.

 

메리세우스 요새

 

장난하냐?

 

금사슴이나 교단에서는 아예 지략이라도 써서 어떻게든 수를 써서 겨우겨우 무너뜨리던데. 그네들보다 군세도 딸리는 상황에서 별다른 지략도 없이 이 철의 요새를 어떻게 정면에서 뚫은 건데? 장난해? 너네 혹시 21세기 무기 사용하니? 진짜 스토리 쓰다가 꿈이라도 꿨나? 신의 계시를 받은 건가?

 

투명 벨레스가 문 앞에 서서 울부짖엇다. 성벽이 무너져내렷다. 메리세우스 요새는 공략당하고 말앗다. 이거야 진짜????????????? 어차피 파엠 하면서 진지하게 개연성 찾을 생각은 없긴 한데 이건 좀 에바잖아요. 이거 하나만으로 그냥 끝이야. 청사자 스토리가 애초에 성립이 안돼. ㄹㄹㅇ 아저씨들은 청사자가 가장 기승전결이 완벽한 스토리라고 하던데 구멍 숭숭난 이게 어떻게…? 기승전결 갖춘 완벽한 스토리 찾는 거면 그냥 두 눈 크게 뜨고 금사슴 하는 게 낫습니다.

 

으니싀바 뭐가 이렇게 길지??????????????? 아직도 하고싶은 말이 많이 남았지만 구구절절 쓰다가 건초염 올 거 같으니까 여기까지 할게요.

 

아무튼 클리어하라고 추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에델 때문에라도 클리어 할 가치가 있었네요. 두 번 할 생각은 없지만 재밌었어요.

Posted by 까망베르 베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