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수 처치에 대해선 베테랑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마미조차도. 일정 수를 넘는 마수 무리들에게 포위되는 상황에서는 도주를 우선하고는 했다. 혼자의 몸으로 감당키 어려운 수의 마수와 싸우는 것은 사실상의 자살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아케미 호무라는 활을 들고는 했다. 그녀의 의무는 마수를 쓰러뜨리고 세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일찍이 존재했던 한 소녀, 카나메 마도카가 사랑했던 세계를 위해. 하지만 이제 그녀는 자신의 의무로부터 탈출하고 싶다는 유혹에 매 순간 활을 놓기를 소원했다. 마수와의 사투 끝에 자신의 최후를 맞는 것은 가장 이상적인 결말. 하지만, 그래서는 늦는다. 매 순간 그녀는 마도카로부터 멀어진다. 마도카의 흔적과 의지는 이제 그 어느 곳에서도 느껴지질 않았다. 그저 다른 마법소녀가 원환되는 그 마지막 순간에나, 마도카는 실존한다고 겨우 실감할 수 있었다.
이것은 아케미 호무라에게 있어 최대의 비극이었다. 삶의 근원을 잃는 것과 같은 상실감. 더 이상 삶을 유지하고자 하는 의욕과 열의 그 무엇 하나도 없이 그저 호무라는 마수를 죽이는 기계가 되어가고 있었다. 결국은 부서져 주인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그런 기계. 그러나 그런 모습은 호무라 자신 뿐만 아니라 동료들의 상태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쿄코는 협력을 거부했다. 자살신봉자에게 등을 맡길 수는 없다고 단언한 그녀는 홀로 행동하기 시작했고 결국은 마미와도 멀어지게 되었다. 이제와서는 카자미노 시와 미타키하라 시 양 쪽을 오가며 마수 퇴치를 반복하는 모습만이 간혹 보일 따름이었다. 어쩌다 마주치더라도, 비웃듯이 말을 걸어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 자살신봉자는, 그래. 아직도 안 죽었어?'
반면 토모에 마미는. 사람을 버리는 행동을 하지 못한다. 아케미 호무라와의 동행이 이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미는 차마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꼭, 손을 놓는 순간 사라져 버릴 모래알 같은 존재였다. 몰랐다면 할 수 없지만 이제는 마미의 눈 앞에 놓인 사람이다. 그녀가 구제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아케미 호무라를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를 돕고싶어.'
그것이 마미의 의지였다. 토모에 마미의 근간은 선업(善業)이다. 아케미 호무라의 근간이 마도카, 이제는 실전된 현상이라면 마미의 근간은 마법소녀의 행위 그 자체였다. 다른 이를 구하리라. 마미의 목적은 단순했고 따라서 호무라에게 행해지는 관심 역시 언제나 선의에 근거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마미의 도움은 호무라에게 있어선 또 다른 비극과 다를 바 없었다.
"아케미 양?"
지칠 줄 모르는 끝없는 관심. 그것은 밀어내고 거부하고 무시해도 사라지는 일이 없었다. 바로 지금처럼. 호무라는 마미의 모든 관심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했다. 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리 했으리라.
"...잠깐. 제대로 잠은 자고 있는 거니? 많이 피로해보여."
'아무래도 좋잖아.'라는 생각은 호무라의 안에서 맴돌다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 사람은 그런 단순한 거부의 반응에 기뻐한다. 적어도 아직은 대화할 의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2차적인 추궁에 들어올 것이다. 이제는 거북하다 못해 경멸이 일 정도의 그런 선의는 호무라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별 다른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저 등을 돌린다. 그것으로 대답이 되었기를 바라며, 호무라는 마미에게서 떠나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이 실책이라면 실책이었을 것이다. 토모에 마미는 생각보다 끈질긴 사람이었다. 마미는 분명 버려지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허나 어느 순간부터, 마미는 버려짐에도 불구하고 추격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게 되었다. 호무라의 영향이었다. 이제는 하나 밖에 남지 않은 동료에게마저 버려지는 현실을 참지 못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마미는 이제 내쳐질 걸 알면서도 손을 뻗게 되었다.
탁, 하는 작은 소리. 호무라는 깜짝 놀라 팔을 내쳤다. 토모에 마미가 신체적인 접촉을 꾀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에 상정하지 않았던 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로 호무라는 마미에게 잡혔던 제 왼팔을 등 뒤로 숨겼다.
"...뭐하는 짓이지, 토모에 마미."
서둘러 숨기기는 했지만 호무라의 당황한 반응은 마미에게 어떠한 영양분을 제공한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행동으로부터 '응답' 받았다는 기쁨 덕인지, 표정이 한층 밝아진 그녀는 손에 들고있던 물건을 호무라의 눈 앞에 내밈으로써 한 번 더 호무라를 당황시키는데 성공했다.
"아케미 양, 밥도 제대로 챙겨먹고 있지 않지?"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는 듯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어지는 정적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조적인 투로 말을 이었다.
"도시락이야."
마미의 눈짓에도 불구하고. 호무라는 제 팔을 앞으로 내밀지 않았다. 도시락을 받고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도 있고. 무엇보다 마미에게 들키지 않게 해야 할 것이 있었다. 자신의 이러한 행동이 토모에 마미를 상처 입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호무라는 끝내 마미의 친절을 거부했다.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야."
"...그게 너의 대답이니?"
호무라는 천천히 마미를 응시했다. 마미 역시 지쳐있는 듯 했다. 목소리엔 힘이 없고 얼굴엔 피로한 기색이 가득했다. 팔다리는 힘없이 그저 늘어져있는 게 전부다. 어쩌면 자신의 몰골 역시 이러할 지도. 아니, 더 심하면 심했지 이보다 덜하진 않으리라. 그런 자조 섞인 감상을 품는 것도 잠시. 호무라는 뇌리를 스치는 강렬한 자극에 놀라 숨을 들이켰다. 머지 않은 곳에서 끔찍할 정도로 어두운 저주의 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마수다. 마미 역시 그 기척을 느낀 듯 진지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인다. 두 사람은 이렇다 할 말도 없이 자리를 박찼다.
토모에 마미와 아케미 호무라 둘은 굴지의 베테랑 마법소녀다. 둘이 힘을 보탠다면 마수를 처치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것이 평상시의 두 사람이었다면. 문제는 호무라에게 일어났다. 그녀는 마수의 협공에 평소보다 한박자 늦은 반응으로 대응했다. 토모에 마미가 만전의 상황이었다면, 이러한 호무라의 분만큼 조금 더 많은 활약을 함으로써 싸움의 평형을 유지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마미 역시 결코 좋다고 할 만한 몸상태가 아니었다. 제 앞가림을 하는 데에만 전력을 쏟아붓는 채, 닥쳐오는 마수의 공격을 쳐내고 반격하는 데에만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아케미 호무라가 쓰러지는 건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무력화된 호무라는 삽시간에 추락했다. 이 모습이 마미의 어떤 면을 자극했는지는 모른다. 반격하는 것도 힘에 부쳐보이던 마미는 곧 무지막지한 화력으로 마수들을 일격에 쓸어버리고, 호무라를 향해 서둘러 달려갔다.
"...손 대지 마."
"가만 있어줘. 특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아케미 양보단 내 회복 마법이 더 뛰어나."
그 말에 설득당했는지도 모른다. 호무라는 곧 저항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기절하거나 잠든 것은 아니고 그저 품에 안긴 채 마미를 올려다보는 게 거북한 모양이었다.
"아케미 양 답지 않았어.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마치 큰 부상을 입은 채로 억지로 몸을 움직이는 듯한 굼뜬 모습이었다고. 그렇게 묘사하면서, 마미는 한 손을 호무라의 배 위에 얹었다. 따뜻한 노란빛의 마력이 마미의 손으로부터 발현된다. 치유가 진행되는동안 호무라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얌전히 안긴 채 눈을 감고있었다. 그 모습이 꼭 편안히 잠든 것만 같아서, 마미는 내심 그 순간이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미키 사야카가 원환되고 사쿠라 쿄코가 떠나간 이후로 두 사람은 이런 편안한 분위기로 있어본 일이 없었다. 관계는 파국을 맞은 듯이 억지로 뒤틀려져서 긴장된 상태만이 지속 되었을 뿐.
외견상 보이는 문제는 별로 없었다. 호무라가 정도 이상으로 지치고 피로해 보이긴 했지만 그건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녀는 언제나 의욕이라곤 없는 파리한 모습으로 걸어다니고는 했다. 그렇지만 마수와 싸우는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때보다 생기 있었기 때문에 사실 큰 문제는 되지 않으리라 판단하고 있었다. 잘못된 판단이었는지도 모른다. 제 생각을 고치면서, 마미는 재빠르게 호무라의 상태를 점검했다.
본인이 눈을 감고 있는만큼 이런 기회가 언제 주어질지 모른다.
'이 정도로 순종적인 아케미 양은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네.'
호무라의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를 훑어보면서 마미는 새삼 감탄했다. 차갑기만 하던 눈을 감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확 달라졌다. 머릿결은 곱고 얼굴은 단정하니 예뻐서, 이렇게 정면으로 얼굴을 뚫어져라 보게된 일이 처음인만큼 감탄도 일었다. 아케미 호무라는 확실히 미인이었다. 다만 지금은 몸의 피로가 누적된 듯 안색이 창백하고 눈 밑이 거뭇거뭇 한 것이 흠이었으나 잘 먹고 잘 자게 된다면 금방 회복할 수 있으리라. 몸의 선은 얄상하고 품 안에 들어온 무게는 가볍기 그지 없었다. 가녀린 뼈대와 어깨선이 그대로 느껴졌고 조금만 강하게 압박하는 것으로도 큰 상처를 입힐 수 있으리라는 실감이 들었다. 곧게 뻗은 콧대와 창백하게 질린 입술. 한 손에 잡힐 듯한 얇은 목, 여린 어깨선을 지나 호흡을 따라 오르내리는 가슴, 배, 힘없이 늘어뜨린 가느다란 팔과 다리 등. 관찰을 멈추지 않던 마미의 시선이 어느 한 지점에 이르렀을 때. 마미의 눈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아케미 양, 이건..."
목소리가 흔들려나온다. 이와 더불어 자신을 받치고 있던 마미의 팔이 불안정하게 떨리는 것을 느끼고. 눈을 번쩍 뜬 호무라는, 곧바로 마미의 손을 벗어나 제 몸을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왼팔을 뒤로 숨기며 작게 혀를 찼다. 가장 들켜선 안될 사람에게 좋지 않은 것을 들켜버렸다.
"소울젬이!"
"내버려둬."
말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호무라는 그저 제 손을 숨기는 걸로 밖에는 대응할 수가 없었다. 마미가 따라서 몸을 일으킨다. 좋지 않은 여건의 몸상태로 마미에게서 도주할 수 있을까. 만전의 호무라였어도 힘드리라. 하물며 지금은.
"아케미 양. 왼손을 보여주겠어."
"안돼."
"지금 내가, 허락을 받으려고 묻는 걸로 보여?"
무의미한 문답은 거기까지였다. 호무라는 기습적으로 활을 소환해내면서. 활시위를 당겨 마미를 겨누었다. 보랏빛을 머금은 마력의 화살이 당장이라도 쏘아질 듯 팽팽하게 당겨진 채로 활대를 벗어나고자 준동한다. 활시위를 당기는 바람에 얼핏 보여진 왼손의 소울젬은, 가히 '어둡다'라고 칭할 수 있을만큼 검게 물들어 요동치고 있었다. 평소 그녀가 지니고있던 영롱한 밝은 빛은 이미 태반이 죽어 검은 파동에 갉아먹혀 그 생기를 잃고있었다. 명백히 소울젬이 한계에 달한 상태다.
"소울젬이 이렇게 될 때까지 정화하지 않았던 거니?"
"...더 이상 다가오지말아줘."
지금도, 앞으로도. 작게 웅얼거리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마미는 한걸음을 내딛었다. 핑,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화살이 춤을 추듯 내달려와 마미의 귀를 찢으며 지나간다. 이 압도적인 빠르기. 단순한 위협사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력을 다한 것이 분명했다. 찢겨져나간 귓볼을 매만지면서, 마미는 그제서야 납득했다. 오늘따라 한 박자 느린 호무라의 움직임, 도시락을 건네주기 전 왼손을 잡혔을 때 보인 그 날카로운 거절, 지금에 와서 이렇게 명백하게 적대적 의지를 표명하는 이 모습은 전부.
아케미 호무라는 원환되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정화를 거부했다.
그제서야 의문들이 해결되었다. 그녀가 이전에 자신을 향한 호의와 관심을 거부한 것. 쿄코가 '자살신봉자'라고 칭하며 거리를 두었던 것, 마미의 조언이나 도움을 거절하다 못해 싫어하던 모습 전부가. 사실은 자신의 종말을 바라서였다고.
그런 모습,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사람이 죽는 것을 지켜보라고. 이전의 쿄코라면 때려서라도 말리지 않았을까. 지금은 호무라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마미 자신 밖엔 없다. 이 시점에서 생각을 마치고, 마미는 팔을 휘둘러 순식간에 대량의 리본을 소환해냈다.
이 명백한 적대적 태도에. 호무라 역시 이를 악 물며 전투의 채비를 갖춘다. 오염 직전의 소울젬으로 남은 마력이라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의 정도 밖에 없는 아케미 호무라. 다소 피로하긴 하지만 충분히 여지가 있는 토모에 마미. 결착을 짓는 데는 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더 이상의 마력 소비 자체를 금하겠다는 듯이 리본은 순식간에 호무라를 억죄고 들어와 그녀의 신체적 자유를 박탈시켰다.
"왜. 왜 정화하지 않으려는 거야?"
여기까지 와서 문답을 나누려고 하나. 호무라는 자조적으로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원환의 이치와 마도카, 그 둘 사이의 연계 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리 한다고 해서 마미가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없을 터였다. 그 어떤 시점에 어떤 방법을 써도, 토모에 마미와는 좀처럼 대화가 통하는 일이 없었다. 피곤할 정도로.
"...아케미 양?"
어떤 말에도 돌아보는 일 없이. 호무라는 그저 시선을 피한 채로 입을 다물었다. 이 모습이 마미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그녀는 다시 한 번 거부당했음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호무라의 이름을 부르던 것도 잠시. 마미는 곧 정신을 차린 듯이 덩달아 입을 다물곤 사방에 흩어진 채로 내버려져있던 큐브를 주워모았다. 마미는 가득 모은 큐브를 품에 진 채로 다가와서, 호무라의 왼팔의 결박만을 가벼이 풀어내었다.
"잠, 하지마...!"
"...이유를 알려줄 수 있겠어? 아케미 양."
말미를 주듯이 묻는다. 호무라는 제 앞에 선 마미와 그 품안의 마수의 흔적들을 바라보면서, 흔들리는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말한다고 해도, 당신은 이해 못 해."
"...그래?"
그럼 나도. 더 이상 말 하지는 않을게. 중얼거리는 것을 끝으로, 마미는 제가 들고있던 큐브들로 순식간에 호무라의 소울젬을 정화해내기 시작했다. 소울젬을 갉아먹던 검은 탁류는 큐브에 의해 빨려나가며 차츰차츰 제 안에 품고있던 보랏빛을 드러내며 넘실대고 있었다. 제 몸을 구속한 리본과 마미를 원망스레 쳐다보면서, 호무라가 저항하기 시작했다. 소울젬이 밝아지면 밝아질수록 그녀의 저항은 거세져서, 그만큼 마미의 구속 역시 더욱 강력하게 호무라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제 몸을 억죄는 고통과 소울젬이 정화되어간다는 사실 앞에 발버둥 치는 호무라의 노력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무의미 해져간다. 차갑게 내리앉는 적막 속에 오로지 소울젬과 큐브만이 어둠을 집어삼키며 빛나고 있었다. 호무라의 소울젬이 거의 완벽하게 밝아지고, 오염을 흡수하는 일을 대충이나마 마쳤을 때. 그제서야 마미는 전부 소모한 큐브들을 땅에 내버리며 작게 웃었다.
"...만족해...?"
작은 소리로 들려오는 물음은 꼭 울음과도 같이 울려온다. 제 두 눈에서 일렁이는 눈물과 절망을 뱉어내면서, 호무라가 입술을 짓씹는다. 항상 차가운 가면과 벽을 쳐놓고 먼 거리에서나 일렁이던 그 눈빛이. 마미와 만난 이래 가장 솔직하고 담백하게 호무라의 마음을 담아내 빛나고 있었다.
"이거 봐, 아케미 양. 할 수 있었잖아, 우는 거."
"...토모에 마미."
왜? 아케미 양. 상냥하게 웃는 그 미소가 오싹할 정도로 가증스러워서, 호무라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눈물만이 넘실대며 리본 위로 똑똑 떨어져 내렸다. 저항이 덜해진 만큼 리본의 압박은 줄어 들었지만 호무라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그저 마미만을 일렁이는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해줄게 아케미 양. 몇 번이든."
당신이 죽게 하지는 않을 거야. 차분하게 미소지으면서, 마미가 손을 뻗는다. 호무라의 눈물 젖은 볼을 어루만지면서 마미가 작게 입을 열었다.
당신을 지켜줄게.
-15.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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