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휘?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주제에 눈속임으로 번쩍 거리기나 하는 그런 조잡한 마법은 부숴지는 것으로 그 가치를 다할 따름이다. 그 어떤 조예도 미학도 없는 단순하고 맹목적인 이 투박한 빛줄기는 마치 무예를 비웃는 듯 가벼웠다. 직선적으로 날아드는 포박형 마법을 가볍게 피해내면서, 카타리나는 그 같잖은 저항을 비웃으며 턱을 까닥였다. 군인이랍시고 지팡이를 치켜든 금발의 어린 소녀가, 땀과 피에 젖어 숨을 몰아쉬며 가까스로 서있는 그 몰골은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만족스럽다. 의아할 정도였다. 갓 어른이 된 듯한 새파랗게 어린 계집아이가 단단한 갑주를 입고 전장을 누비는 그 모습이 어찌나 아이러니 한지. 같잖다. 그건 너무도 한심한 일이었다. 제 앞가림 할 주제도 되지 않는 것이.
"너의 그 훌륭한 조국은 이미 너를 버린 모양이구나."
그렇기에 박살내고 싶었다. 소녀가 입술을 짓씹는다. 뻔한 도발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그 모습은 패잔병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풋내 나는 애송이."
죽이기에도 모자라. 그럴 듯한 반항도 해보이지 않고 그저 무력하게 빛이나 날려대는 모습이 도대체 어딜 봐서 군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저 겁에 질려 벌벌 떨며 도망가기에 바쁜 사슴 새끼잖아. 이런 걸 군인이라고. 데마시아의 그 무지한 정의 족속들은 역시 쓰레기와 다를 바 없다.
"...닥쳐."
과연. 마른 입술을 핥아내며, 카타리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내내 칼에 베이고 얻어맞더니만 제일 처음으로 한다는 말이, '닥쳐'다. 거친 호흡에 의해 떨려나온 짧은 마디였지만 목소리를 감상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강직하고 직선적인 그 바보같은 성정이 그대로 내다보이는 단정한 목소리였다. 신음 한마디 흘리지 않더니만 굳이 이제 와서 목소리를 들려주는 이유가 뭘까. 유언? 아무래도 좋다. 흥이 돋았다. 손에 든 단도를 던졌다 받으면서, 카타리나는 천천히 마른입술을 핥았다.
"좋아. 내기를 하자, 애송아."
"...누구 마음대로...!"
"1분을 줄 테니, 갈 수 있는 만큼 가봐."
눈썹을 찌푸린다. 고심하는 듯한 눈빛이 약하게 흔들린다. 아무래도 좋다. 정말로 내기에 응해서 도망쳐도 재밌겠고, 이 자리에서 덤벼와도 나쁠 건 없을 것이다. 뭐가 어찌 됐든 결론은 저 얄상한 목에 시퍼런 칼날이 박히는 걸로 끝날 것이니. 무력하게 주저앉아 있는 새끼 동물보다야 실낱 같은 희망에 몸부림 치는 자를 죽이는 것이 더 즐거운 일이긴 하다만.
"...으읏...!"
소녀는 고민하던 것이 언제였냐는 듯, 카타리나를 등진 채 바로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흙 위를 짓밟고 뛰쳐나가는 그 몸짓. 맥동하는 사슴의 혈관. 하얗게 질린 얼굴을 수놓는 땀과 핏방울을 사방에 떨쳐내며 도망하는 꼴이란! 지팡이를 꽉 쥔 손아귀와 무거운 군장을 인 그 얄상하고 가느다란 등과 허리엔 지금 당장이라도 단도를 꽂아넣을 수 있었다. 한 번 손을 쓰는 것만으로 저 무방비한 등을 찍어누를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나비처럼 비틀거리다 무력하게 쓰러지겠지. 흐음. 작게 코웃음을 치며, 카타리나는 제 손으로 천천히 칼날을 훑었다. 그녀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이 기괴한 형태의 단도는 찌르고 벨 때의 그 맛이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여린 살을 매끄럽게 헤치고 들어가 그 섬세한 근육과 뼈를 짓이기며 뽑아내는 칼. 이 단도로 행하는 그 살인의 쾌락은, 카타리나 뒤 쿠토 그녀 인생의 유일한 낙이었다. 저 데마시아의 어린 계집 역시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쾌락을 선사할 것이다.
1분.
비스듬히 솟은 칼날을 서로 맞댄다. 손에 힘을 주어 부드럽게 훑어내리니 귀를 아리는 높은 소리가 울려왔다. 그녀는 끼기기긱 거리는 그 칼날의 불협화음을 조국 녹서스만큼 사랑했다. 사슴 사냥의 시간이다. 상처입고 지친 어린 마법사와, 고양이보다도 날렵하게 단련된 암살자의 추격전이다. 칼날을 감상하는 것도 잠시, 그녀는 순식간에 소녀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추격은 빨리 끝났다. 카타리나는 굵은 나뭇가지 위에 제 몸을 맡긴 채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작게 혀를 찼다. 무력해라. 무력해. 가소로울 정도다.
"기껏 시간을 줬는데. 이게 전부인가봐?"
"아..."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작게 탄식하며 소녀가 위를 올려다보는 순간,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단도를 쏘아냈다. 썩어도 준치라 했나. 소녀는 가까스로 지팡이로 단도를 쳐내고, 작게 신음하며 제 손을 부여잡았다. 단도를 쳐내는 와중에 손가락을 베인 것이 분명했다. 제 바로 아래에서 이를 갈며 저를 올려다보는 그 새파란 눈동자는 방금 전까지 도주하던 패잔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도전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감상을 방해하듯이. 핑,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목전으로 빛의 구슬이 날아들었다. 보이는 건 그저 조금 눈부신 성가신 구슬 같지만 맞았을 때의 파괴력은 무시무시하다. 이를 잘 알기에 카타리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나뭇가지를 발판 삼아 앞으로 도약한다. 몇 번의 가벼운 공중제비를 끝으로 날렵하게 착지하면서, 견제의 목적으로 두 개의 단도를 날려보냈다.
"아윽!"
막을 수단이 없었던 모양이지? 한 개는 그 알량한 마법으로 어떻게 막아낸 모양이지만 다른 하나마저 막을 재량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소녀는 칼날이 틀어박힌 제 왼팔을 고통 서린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왜 그래? 놀이는 이제부턴데."
벌써부터 떨면, 어쩌려고 그래. 혀로 입술을 축이며, 카타리나는 깔깔 대며 웃었다. 조국의 명예를 위해 두 눈을 부릅 뜨고 전장에 선 어린 마법사는 어디 갔는지. 그저 순한 양 한마리만이 제 앞에 남아 덜덜 떨고 있었다. 가볍게 발걸음을 옮긴다. 그녀는 뒷걸음질 치지도 못하고 얼어있는 소녀의 앞에 우뚝 서서야 그 고통으로 잔뜩 찌푸려진 예쁜 푸른눈을 볼 수 있었다. 눈물이 어린 눈으로 카타리나를 무력하게 쳐다보면서. 소녀는 입술을 떨었다. 소녀의 어여쁜 금발이 땀과 흙먼지, 제 것이 아닌 다른 이의 피로 얼룩져 눈 앞을 흩날리고 있었다.
카타리나는 새 단도를 꺼내들고 시위하듯 소녀의 눈 앞에 칼날을 들이밀었다. 천천히 이루어진 움직임이었으나 그 몸짓엔 어떠한 힘이 있었다. 저항하며 눈을 돌릴 수도, 등 돌려 도망치지도 못하게 하는 강력한 압박이었다. 소녀의 갑주 사이 빈 틈. 그 하얀 목과 여린 어깨의 살결을 따라 음미하듯이 칼날을 부드럽게 움직인다. 차디찬 칼날이 생살에 닿았기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생명의 위협 때문인지. 소녀가 움찔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워낙 날카롭게 다듬어진 칼날이라 그 작은 움직임에도 살결이 베였다. 날을 타고 새빨간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단도에 새겨진 문양을 수놓는 그 적은 피를 물끄러미 응시하면서. 카타리나는 심장이 두근대는 것을 느꼈다. 바로 이 순간이다. 이 순간에 그녀는 살아있음을 실감했다. 제 손아귀 위에 타인의 생명이 놓이는 이 마지막의 순간. 누구보다도 가까이 생과 사의 경계에 서 생명의 죽음을 고하는 이 순간에 그녀는 삶을 인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죽이기엔 아쉬운 감이 있지. 카타리나는 파들파들 떨리는 그 여린 몸을 제 빈 손으로 가볍게 밀어제꼈다. 상상 이상으로 가벼웠다. 떠밀려 주저앉은 소녀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는 눈으로 카타리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공포와 고통, 분노, 슬픔, 알 수 없는 어떤 감정과 그리고 의문이 뒤섞인 눈빛이 카타리나의 모습을 담고있었다.
가장 먼저. 그녀는 소녀의 심장 부근에 단도를 내뻗었다. 그대로 찌를 듯이 칼날을 치켜 올린다. 소녀의 눈을 마주보면서 카타리나는 이 일련의 행위를 즐기고 있었다. 소녀가 죽음을 각오한 듯한 눈을 하자마자, 목표를 옮겨 갑주의 연결부위를 베어내렸다. 쨍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소녀의 상반신을 감싸고 있던 갑옷의 일부가 바닥으로 떨어져내린다. 갑주 아래에 입는 몸에 딱 달라붙는 재질의 가죽옷만이 소녀를 감싼 채 온전히 남아있었다.
명백히. 희롱하는 행위였다.
"카타리나 뒤 쿠토...!"
소녀가 분노에 차 그 이름을 부르짖자, 카타리나는 뒤이어 소녀의 남은 옷마저 칼날로 베어냈다. 탐스러운 살결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쇄골과 소녀답게 아름다운 형태의 가슴, 새하얀 살결을 자랑하듯 호흡에 따라 오르내리는 예쁜 배와 허리. 앙증맞게 패인 배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갑주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던 몸매가 순식간에 카타리나의 눈 앞에 보여지고 있었다. 소녀가 성한 손을 들어올렸다. 제 상체를 가리겠다는 그 심정이 보여서,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이 카타리나가 팔을 잡아챘다. 여린 팔목을 짓누르듯 찍어눌러 제압하고. 엉거주춤 앉아있던 소녀를 떠밀어 눕힌다. 바닥에 눕혀진 소녀는 거의 공포에 질려 허우적대며 몸을 움츠리려 했다.
가소롭기는. 카타리나가 소녀의 왼팔에 박혀있던 단도를 아무렇지 않게 뽑아올리자, 소녀가 비명을 지르며 눈을 치떴다. 째지는 목소리와 피가 허공을 수놓으며 자욱이 퍼진다. 봐주지 않겠다는 듯이, 카타리나는 가볍게 웃으며 소녀의 하얀 배를 맨 손으로 쓰다듬었다. 언제든지 이 곳을 찔러버릴 수 있었다. 무언의 행위에 소녀가 몸을 파들파들 떨며 카타리나를 올려다본다. 공포와 고통, 분노, 몇몇의 감정과 의문으로 뒤섞여 있던 그 어여쁜 푸른눈은 이제 사랑스러울 정도로 여리게 떨리고 있었다.
카타리나는 욕망에 이끌리듯 그 눈에 입맞추고, 소녀의 입술을 매끄럽게 핥아올렸다. 입술을 열지 않으려 하는 자그마한 반항에 분노해 명치 즈음을 세게 내리치자 그제야 가쁜숨을 내쉬며 소녀가 입을 벌렸다. 그 여린 입술을 탐한다. 주저하지 않고 가지런한 치아와 입천장, 피맛이 나는 입술을 핥고 빨아올리며 들썩이는 몸을 재차 짓눌렀다. 그 깊은 곳 안에 엉거주춤 굳어있는 혀를 제 것으로 자극하는 순간, 소녀가 이를 악 물었다.
"윽."
이 지경이 되어서까지 거절을 한다고. 얼얼한 혀와 피맛이 나는 침을 삼키며, 카타리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처음이었다. 이런 식의 반항은. 소녀는 경멸한다는 듯한 눈으로 카타리나를 올려다보며 제 입술을 마구 짓씹고 있었다. 그렇다면 더욱이 가만히 두고볼 수가 없다.
"이 가소로운 애송이가 감히."
우악스럽게 가슴을 쥐어잡았다. 같은 여자로서 그녀는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여자가 고통스러워 하는지 잘 알고있었다. 가슴을 거칠게 쥐어잡고, 쥐어짜듯이 손아귀에 힘을 가했다. 비틀어 꺾으며 손톱으로 그 여린 살을 짓눌렀다. 강한 손아귀 힘으로 압박하자 소녀가 발버둥을 치며 카타리나를 밀어내려 애쓰기 시작했다. 아무렴, 저항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 눈은 소녀를 똑바로 응시하면서 카타리나는 그 반응을 즐기듯 가슴을 쥐었다 풀어줬다 했다. 와중에 유두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자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목적이 섹스가 아니므로, 굳이 정성들여 애무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가 원하는 건 소녀의 모든 것에 대한 정복이었다. 그 생명과 목숨 뿐만 아니라 신체의 모든 자유, 가령 예를 들자면 순결이라든지 혹은 성감 같은 소녀가 이전 그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던 신체의 모든 권리 말이다. 그녀는 단도로 옷을 더욱 도려내기 시작했다. 고작 옷이나 잘라내라고 있는 칼은 아니지만 이 역시 하나의 즐거움 아니겠는가. 생명 뿐 아니라 그 외의 모든 신체적 가치를 희롱하고 조롱하는 행위 자체에 정복감과 만족감을 느끼면서. 카타리나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복부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니, 그제서야 소녀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카타리나가 어떤 목적으로 일을 벌이고 있는지 드디어 확신을 마친 모양이었다. 경멸로 일렁이던 그 눈빛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소녀의 질 입구를 무심하게 쓰다듬으면서, 나머지 손가락을 이용해 아래를 훔쳤다. 특별한 애무를 한 건 아니어서 만족할 만큼 젖어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애액은 거의 나오지 않아 이대로 삽입한다면 꽤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알 바는 아니었다. 제 손가락을 질 안으로 쓰윽 들이밀면서, 카타리나는 소녀의 얼굴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차츰차츰 더욱 깊이 들어갈수록 소녀의 얼굴 역시 아름답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전에 이렇게 성적으로 타인을 희롱한 적은 없었지만 이 설명하지 못할 묘한 정복감과 카타르시스에 그녀는 가슴이 떨림을 느꼈다.
"럭산나 크라운가드. 녹서스인에 의해 지배당하는 기분은 어때?"
"...흐, 으... 으읏"
"...흥미로워."
이런 상대는 없었다. 죽이는 것보다도 자신이 갖고싶어지는 상대는. 그런 욕심에 이끌려서, 그녀는 제 손의 움직임에 좀 더 힘을 가했다. 고통으로 덜덜 떨리던 몸이 손가락의 가벼운 두드림 한 번에 움찔움찔 아우성 치는 것이 가소롭지만 또한 그만큼 사랑스러웠다. 카타리나 뒤 쿠토가, 타인에게 '사랑스럽다'라는 감정을 느낀다고. 눈을 깜빡이면서 카타리나는 작게 실소했다. 한 팔이 열심히 치대며 움직이는 만큼. 그녀는 다른 손으로 럭스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흠뻑 젖은 땀을 훔쳐내고 눈물을 닦아내며 찢어지고 튼 입술을 상냥하게 어루만져줬다. 상냥하게라. 내심 놀라면서도 카타리나는 제 손을 멈추지 않았다. 아무래도 좋았다. 럭스를 가지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기뻤다.
풋내나는 애송이 럭산나 크라운가드가 카타리나 뒤 쿠토의 마음을 떨리게 했다고,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면서 인정하는 자신이 있었다. 앞으로 어찌 해야 할까. 적대국의 귀족으로서 둘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존재였다. 원래라면 여기 이 자리에서, 럭스는 죽어야했다. 하지만 이제 카타리나는 럭스를 죽일 수 없었다. 이리도 아름다운 물건을 어찌 해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제 마음을 부인하면서, 결국 카타리나는 오른팔을 움직이는 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둘의 이 첫만남과 첫섹스가 럭스와 카타리나 자신의 관계를 잇는 신호탄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로.
-15.05.31
수위라기엔 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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