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9.10.12 (파이어엠블렘 풍화설월) 에델레스 - 애정
Backup - FE3H2019. 10. 12. 11:11

사랑의 4단계,

3. 애정

 

 

 

 

 

 

 

 

적막한 밤에 둘러싸여 희미한 달빛 아래 드러나는 돌의 탑. 탑 아래 자리한 아리따운 정원과 그 사이에서 널찍이 울려오는 풀벌레 소리만이 그저 유일한 밤. 에델가르트는 돌계단을 두드리는 제 발소리와 달빛 아래서 흐리게 드러나는 탑의 정경에 몰두하여 깊은 사색에 잠겼다.

어느 날 밤, 이 고요한 탑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만났다. 둘은 자연스레 감정을 느끼고 운명처럼 가까워진 끝에 사랑을 나눴다. 별 것 아닌 사랑 얘기, 시시한 옛날 이야기다. 

묵묵히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벨레스를 향해 담담히 말을 끝맺으면서, 에델가르트는 달빛이 쏟아져내리는 창가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웬지 당신은 나에 대해 좀 더 알아줬으면 하고 바라게 돼."

에델가르트는 가면을 쓰고, 스스로를 가장하고, 굳건히 서 단단하게 몸을 굳히는 데 익숙했다. 그러니 그 누구도 좀체 가면 너머의 그녀를 보지 못한다. 다만 나의 선생님, 당신은 항상 달라. 당연하다는 듯 그런 저를 이해하고 아껴주는 벨레스가 옆에 있을 때면 에델가르트는 스스로가 상상하지 못 했던 위안을 느끼고는 했다. 선생님이 바라보는 것은 가면을 쓴 여자가 아닌 그 너머의, 그저 인간인 에델가르트일 뿐이라고.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잔잔하게 벨레스와 짧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대개는 별 것 아닌 첫사랑의 추억 같은 잡다한 이야기였을 뿐이다. 그러나 벨레스가 첫사랑의 화제에 어쩔 줄 몰라하며 고개를 숙일 때, 에델가르트는 제 선생님의 그 어리숙한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그저 웃음을 띄웠다. 여신의 탑에 얽힌 추억과, 무도회의 감상, 과거의 첫사랑 같은 화제를 아무렇지 않게 엮어 흘려보낸다. 

그리 대화를 오래 한 것 같지 않았으나 에델가르트는 어렴풋이 많은 시간이 지났음을 깨달았다. 창가 너머로 쏟아지는 달빛의 위치가 미세하게 변했고, 돌탑의 그림자도 뒤따라 모양을 바꿨다. 언제 이렇게나 시간이 지났는지.

"……슬슬 무도회로 돌아가자, 선생님. 당신과 춤추고, 얘기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잔뜩 있을 거야."

그러자 벨레스가 팔짱을 끼며 고개를 젓는다.

"……사실 숨을 돌리고싶어 온 참이다."

"숨을?"  

에델가르트는 의아한 기색으로 고개를 기울이고, 의외의 대답에 눈을 깜빡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 학생들이 너무 많았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래, 선생님은 인기인이었지. 에델가르트는 언제 어디서든 벨레스가 학생들과 함께 어울리고 식사하는 모습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홀로 조용히 낚시를 즐기거나 온실에 있는 순간을 제외하고, 선생님은 사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에델가르트가 깨달음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벨레스도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숙였다. 어딘가 실망한 것 같기도 하고 고심하는 것 같기도 한 그 태도에 에델가르트가 조용히 눈을 맞춰오면, 벨레스가 느릿하게 입을 연다.

"사실 너와도 춤추고 싶었다, 에델가르트."

"…나? 나와 춤추고 싶었다고?"

"다른 반 학생들과도 여러 번 춤을 췄는데. 정작 내 가장 뛰어난 학생과 춤추지 못하다니 아쉽다."

에델가르트는 이 담담한 고백에 어떤 답을 해야할지 찾지 못해 그저 입을 다물면서 눈을 깜빡였다. 물론 선생님은 별다른 의미 없이 뱉는 말이었겠지만, 에델가르트는 그 순간 범람하는 제 기대와 기쁨에 수몰될 지경이었다. 아무렇지 않아 하는 당신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는 내가 가끔은 우스워. 

에델가르트는 자조하면서 말없이 제 허리 위로 손을 얹었다. 이 곳은 눈길이 많아 소란스러운 무도회장도 아니고, 선생님과 저 외에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조용한 여신의 탑이다. 잠깐 정도의 여흥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스스로도 황당한 생각인 건 알지만 사실 에델가르트 역시 벨레스와 춤을 추고 싶었다. 무도회 내에서 몇 번이고 벨레스 옆을 스쳐지나가며 각기 다른 파트너와 춤을 추는 제 선생님을 보았을 때. 저 옆에서 같이 어우러져 춤추고 있는 것이 저이기를, 망연히 소망했었다.

"……선생님이 곁에 있으면, 어떤 일이든 가능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터무니없는 생각과 행동조차 무의식적으로 납득하게끔 만드는 그 기묘한 안정감. 당신만이 가진 신비한 매력이지.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선생님, 당신은 내게 이름 모를 두려움을 안기기도 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희미한 가능성의 끝에서, 매듭 짓지 못한 미련과 어리석은 불확실성으로 모호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무너질 것만 같은, 에델가르트가 마주해야 할 지도 모를 가장 단단하고 두려운 벽. 

에델가르트는 조용히 말을 삼키며 느릿하게 손을 들어올렸다. 물끄러미 저를 바라보는 벨레스의 앞에 점잖게 팔을 내밀고, 미약하게, 그러나 결코 굴종하지 않는 자세로 낮게 허리를 굽히며 고개를 숙인다. 한 손은 가슴 위에 단정하게 얹어 예의 바르게 몸을 접은 다음 묵묵히 시선만을 올려 벨레스의 눈을 올려다본다. 아마 이는 벨레스가 여지껏 받아왔던 그 어떤 것보다도 우아하고, 공손한 춤 신청이었을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벨레스가 띄워내는 낯선 당황의 기색. 멍하니 선 선생님을 재촉하고자 에델가르트는 작은 한숨과 같이 속삭이며 말을 뱉는다.   

"……손을 잡아주겠어, 선생님?" 

적막한 밤만큼이나 낮게 가라앉는 작은 목소리에 정적으로 눈을 깜빡이면서, 벨레스가 에델가르트를 들여다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 순간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지. 제자의 모든 것을 낱낱이 들춰보려는 듯 동요없이 빛나는 밤의 눈동자.   

고요한 달빛의 아래에서 벨레스가 천천히 손을 내민다. 에델가르트는 맞닿아오는 손을 기쁘게 끌어잡고, 천천히 몸을 바로 하면서 벨레스를 제게로 당겼다. 벨레스가 한걸음 다가오는만큼 둘 사이의 간격이 사라진다. 부드럽게 붙어서며 허리에 팔을 붙이고, 제 어깨 위에 내려앉는 벨레스의 팔에 조용히 숨을 삼킨다. 풀벌레 소리조차 멀어져가는 아득한 침묵의 밤끝에 나란히 서서, 제 귓가 위로 흘러드는 상대의 호흡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소리인 것처럼 적막을 음미하면서. 제게 기대선 상대의 눈동자에 집중하면서, 미미한 떨림을 감추며 차분히 팔을 감싼다.   

희미하고 나직이 울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둘의 발소리가 반주가 된다. 익숙한 박자를 속으로 세면서 에델가르트는 먼저 자연스럽게 벨레스를 이끌었다. 춤은 귀족이 갖춰야 할 아주 기본적인 소양 중 하나로, 필요하다면 에델가르트는 여자 역은 물론이고 남자 역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었다. 먼저 춤을 신청한 만큼 황녀는 자연스레 리드하는 포지션을 취하며 선생님을 끌어들였다. 자연스레 제게 기댄 몸을 당기고, 밀어내고, 무언의 박자와 운율에 맞춰 파트너를 이끌어 조화로운 춤사위로 인도한다. 서로에게 기대어 온기와 무게를 주고받으며 마치 한 몸인 것처럼 발을 맞추노라면,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춤이야 말로. 에델가르트와 같이 속마음을 좀체 내뱉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깔끔한 대체 언어일 것이라고.    

"…무도회장에서 봤을 때도 느꼈지만, 당신은 정말 춤도 흠 잡을 데가 없구나……."

"…그런가? 에델가르트에 비하면 모자르다."

에델가르트는 벨레스의 침잠한 목소리에 그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와중에도 팔과 발은 좀체 멎는 법 없이 유기적으로 얽혀 흔들린다. 마치 그네를 타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밀고, 당기고, 감싸안고, 때로는 느슨하게 풀어주었다가 세게 끌어안기도 하면서. 발을 틀어 자연스럽게 몸을 한 바퀴 돌리고 저를 뒤따라 도는 벨레스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안는다. 동시에 에델가르트는 자신감에 찬 미소를 지어보이며 벨레스를 올려다봤다. 

"그거야 당연하겠지, 선생님?"

벨레스는 마치 동의한다는 것처럼 가벼운 웃음을 띄워올렸다. 제 눈 앞에서 피어나는 그저 경이롭고 찬란한 이 잔잔한 미소. 절로 넋을 잃어 매료될 것만 같다. 이게 바로 다른 학생들이 그렇게나 찬미하던 여신의 탑의 마법이라는 걸까. 몸에 익은 동작을 말없이 반복하면서, 에델가르트는 그저 감탄어린 한숨과 함께 벨레스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시간이 갈수록 선생님은 점차 더 자주 웃게 되었고, 눈썹을 찌푸리게 되었으며, 얕게나마 분노하게 되었다. 석상처럼 굳어져있던 낯이 점차 부드러워지고, 미동조차 없이 잠잠하던 눈에는 더더욱 다채롭고 깊은 감정이 자리를 잡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즐거움과 기쁨의 표현이 늘어났고, 덕분에 요즈음 에델가르트는 벨레스의 웃음에 그저 말을 잃는 일이 반복되었다. 벨레스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간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잔잔한 웃음만은 몇 번을 바라보아도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어서, 에델가르트는 매번 불규칙적으로 뛰어대는 심장께를 그때마다 남 몰래 끌어안았다. 사실 몇 번이고 벨레스에게서 등을 돌려 숨을 고른 적도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상념에 잠겨있던 에델가르트가 놀라 고개를 젓는다. 벨레스의 눈으로 재차 시선을 돌리면, 저를 담는 고요한 바다가 거기 있었다. 그 순수하게 맑은 푸른 눈동자 속으로 천천히 잠겨들어간다. 에델가르트는 염려를 띄는 벨레스의 눈에 말없이 빠져들어가면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마주 웃음을 지었다.

"…아무 것도. 괜찮아."

서로를 꼭 껴안은 채 마지막 박자에 맞춰 몸을 돌리고, 자연스레 춤은 마무리 된다. 다음 순례로 서로 멀어진 후 허리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나누는 것이 맞겠지만, 오묘하게도 둘 중 누구도 서로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에델가르트는 제 어깨를 감싸안은 팔이 흔들림 없이 가만 얹어져있는 것에 감사하며, 선생님의 품으로 천천히 고개를 묻었다. 저 끝 모를 눈을 마주하며 더 이상 가만히 인내할 자신이 없었다. 

사실은 그저 따뜻한 품에 끌어안겨 이마를 묻고, 단단한 허리를 더욱 꽉 끌어안고, 마주닿아오는 숨결과 온기를 느끼고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춤을 추는 내내, 에델가르트는 꼭 구름에 안겨있는 듯한 꿈을 꾸었다. 잔상처럼 흩어져버릴 것만 같은 온기와 바람을 쫓아 볼품없이 매달리며, 제게 내려앉은 이 잠시 간의 과분한 행복을 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은 짧은 꿈.  

에델가르트는 제 머리칼 위로 내려앉는 옅은 한숨과, 뒷목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벨레스의 손길에 몸을 떨면서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벨레스가 매끄럽게 눈을 맞춰온다. 에델가르트가 느꼈던 그 짧은 행복과 기쁨의 여운이 마치 벨레스의 눈에서도 흘러내리는 듯한 착각. 상냥하게 접혀 깜빡이는 밤바다의 눈길을 사로잡힌 듯 응시하면서, 에델가르트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열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슨 말이든 나눌 수가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 입을 열어 나오는 말은 무엇이든 결국 감탄의 찬사가 될 것이며, 그녀가 여지껏 눌러담아 두었던 불필요한 애정의 고백 밖에 될 수 없겠지. 무언으로, 그러나 결국 눈과 몸으로 생각을 전달하여 둘의 춤을 마무리 지은 것처럼. 이러한 깊은 밤, 축복받은 것만 같은 한없는 밤의 고요를 깨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델가르트는 그저 입술을 달싹이던 끝에 결국 느릿하게 입을 닫았다. 그 대신 마치 밤의 미혹에 매혹된 것만 같은 형태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린다. 저를 응시하는 평온한 바다의 눈에 이끌려 갈망하듯 팔을 뻗고, 떨리는 숨을 삼킨 채 입을 맞춘다. 

정적인 입맞춤 속에 둘은 아무런 말없이 온기를 나눴다. 부드럽고 따뜻한 입술의 온기에 감격하여 솜털과도 같은 입맞춤을 얹고,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한 미약한 애정과 제 마음을 전하며. 그러나 단단히 닫힌 입술 너머로 이 모든 열망과 심정은 단 한숨도 새어나오지 않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알아달라는, 그저 절박하고 가련한 미련을 담아 소리없이 입술을 맞댄다. 

그러나 미약한 호흡을 주고받았던 여린 입맞춤은 곧 흐리게 사라지고, 에델가르트는 천천히 몸을 바로 하여 벨레스로부터 멀어졌다. 창 아래로 흘러내리는 달빛이 처연하게 탑을 비추자 선생님의 동요하는 낯이 드러난다. 점차 드러나는 미세한 놀람과 떨림으로 제 것만큼이나 흔들리는 눈을 마주하면서. 에델가르트는 담담히 몸을 숙여 인사하며 침묵의 춤의 끝을 고했다. 밤의 마법에 이끌렸는지도 모른다. 어찌할 바 없이 떨리는 몸을 간신히 세워 그저 선생님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자 입술을 깨문다. 

"…이제 정말 가봐야겠어, 선생님……."

목소리를 떨지 않기 위해, 말을 씹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평정을 가장한 끝에. 마침내 에델가르트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리는데 성공했다. 다리가 떨려 무너질 것만 같았지만 어떻게든 온전한 한걸음을 내딛고, 등 뒤의 기척에 신경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 한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은 결국 한순간에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에델가르트."

벨레스의 부름 한 번에, 결국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만다. 에델가르트는 제자리에 우뚝 선 채 굳어선 제 두 다리를 내려다보며 말없이 애원했다. 제발, 그냥 떠나게 해줘. 왜 멈춰서는 거야. 못 들은 체 하고 움직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멎어버린 발걸음은 어떻게 해도 다시 떼어지질 않는다. 차마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그저 제가 밟고 선 돌바닥만 바라보면서, 에델가르트는 제게 다가오는 발소리에 잔뜩 긴장하여 몸을 굳혔다. 

황녀가 어찌 할 바 모르고 그저 얼어있는 사이, 선생님의 손길이 다시 따라붙는다. 함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선생님의 손이 제 손을 잡아쥔다. 에델가르트는 다가드는 온기에 놀라 몸을 움찔하면서 천천히 등을 돌렸다. 알 수 없는 눈빛을 한 벨레스가 침묵한 채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기이한 눈빛과 해석할 수 없는 표정에 답을 찾지 못한 에델가르트가 골몰하는 사이, 이번엔 벨레스가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그 모든 몸짓의 가운데 여실히 녹아있는 흐린 열망이란. 온갖 감정과 생각으로 뒤섞여 파도처럼 넘실대는 바다의 눈 너머로, 제게 내리꽂히는 한없이 순수한 바람. 눈에 담긴 저를 천천히 뒤덮으며 퍼지는 그 단 하나만의 깊은 감정을 회피할 수가 없어서. 에델가르트는 거부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마냥 벨레스에게 몸을 내맡겼다. 

제 입술 위로 떨어져내리는 한숨에 놀라 몸을 떨면, 벨레스의 팔이 자연스레 허리를 감아 에델가르트를 끌어당긴다. 홀린 듯 고개를 올려 다시 한 번 제게 주어진 입맞춤에 감격하는 새, 이번에는 벨레스의 입술이 부드럽게 에델가르트를 담는다. 제 입가를 두드리는 부드러운 재촉에 응해 작게 입술을 벌리면, 벨레스는 자연스럽게 에델가르트를 끌어안는다. 에델가르트는 촉촉한 입술 너머로 불어오는 따스한 숨결에 살포시 입을 열었다. 뒤이어 제 입술 사이로 밀고들어오는 뜨거운 한숨과 열망에 인도 당하여 벨레스에게로 매달린다.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고 뜨거운 키스에 등 뒤로 소름이 솟고, 힘이 빠져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도 못하며 그저 벨레스의 등을 끌어안는다. 에델가르트는 천 너머로 제 허리를 느리게 어루만지는 벨레스의 손길과 맞닿아오는 가슴을 느낄 수 있었다. 부딪쳐 얽혀오는 입술 너머로,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뭉근하게 퍼져올라오는 열기에 압도 당한 채, 그저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키스의 열락을 좇아 혀를 맞붙인다. 

입 안에서부터 번져 목을 타고 내려가 제 심장 안에서 넘실대는 온기. 저를 받치듯 끌어안은 품에 그저 몸과 마음을 맡긴다. 휘몰아치는 입술과, 한숨과, 달라붙는 손길에 탄식하고. 제 영혼을 빨아들이는 것만 같은 깊고 뜨거운 키스에 덜컥이며,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손으로 벨레스의 뒷목을 쓰다듬는다. 

에델가르트는 그 순간 아득해진 이성 속으로, 어렴풋이 이것이 본인이 바라왔던 순간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말은 전해지지 않았지만 마치 마음이 맞닿은 것만 같다. 에델가르트는 제게 쏟아져내리는 키스에 맞춰 소리없는 연모를 속삭이며 숨을 삭였다. 

"……하, 아, 선생님……."   

신음과 한숨으로 선생님을 부르며 입술을 떼어내면, 벨레스는 단 한순간의 틈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재차 쉬지않고 입을 맞춰온다. 에델가르트는 저를 무너뜨릴 정도로 벅차오르는 감격과 흥분으로 어찌 할 바 모른 채, 그저 저를 불사르는 본능과 욕망대로 벨레스의 인도에 맞춰 혀를 섞었다. 이토록 강렬하고 압도적인 경험이 있었던가. 따라가는 것만으로 무너져버릴 것만 같은, 제 온몸을 훑어내리는 열망에 숨조차 쉬지 못한다. 

벨레스는 자연스레 에델가르트의 혀를 얽매고, 부드럽고 능숙하게 춤을 추며 그 붉고 여린 살덩이를 집어삼켰다. 춤을 리드한 것은 에델가르트였으나 키스를 리드하는 것은 벨레스였다. 따뜻한, 그러나 불이 붙을 정도로 뜨거운 인도에 사로잡혀 에델가르트가 무너진 호흡으로 간신히 뒤를 따라붙으면. 벨레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강도를 더하고 야생마처럼 날뛰며 에델가르트를 사로잡는다. 이를 훑고 지나가는, 제 안을 두드리는 벨레스의 혀에 몸과 마음이 모두 뒤섞여 흐트러지며 신음이 흐를 때, 에델가르트는 벨레스의 머리를 간절하게 끌어안으며 애원했다. 더욱 깊이 원한다고, 제게서 멀어지지 말라고, 저를 놓지 말아달라고.

밤이 축복하던 무언의 춤은 마무리 되었지만, 제게서 흘러넘쳐 발 밑으로 줄줄이 새어 고이는 애정은 아무리 긴 시간이 지나도 멎지 않는다. 그러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농밀한 키스는 벨레스가 입술을 떼면서 차츰 옅어졌다. 에델가르트는 멈춰왔던 숨을 몰아쉬듯 내뱉고, 입술 새로 신음을 흘리며 벨레스의 목을 그저 세게 끌어안는다. 아직까지도 저를 두드리는 짙은 여운에 압도당한 채 그저 벨레스의 어깨 위로 거친 호흡을 뱉으면서, 여즉 저를 끌어안고있는 품으로 고개를 묻는다.

에델가르트가 무너진 호흡으로 몸을 덜덜 떨며 어떻게든 진정을 되찾는 새, 벨레스는 이를 도우려는 것처럼 천천히 에델가르트의 등을 문지르며 쓰다듬었다. 느릿한 손길이 제 등을 여상스레 쓸어내리는, 천 너머로도 분명하게 와닿은 온기에 안도하고. 그 단단하고 강인한 손가락이 등을 토닥이는 기운에 맞춰 숨을 가다듬는다. 

마침내 에델가르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벨레스를 마주한다. 벨레스는 여전히 평온한 낯이었으나, 에델가르트는 제 선생님의 눈 안에서 번쩍이는 진한 무언가를 엿볼 수 있었다. 후회의 감정인지, 생각인지, 그도 아니면 아쉬움이었는가.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는 미묘한, 그러나 강하고 깊은 벨레스의 편린이 희미하게 드러난다. 담담한 표정과는 달리 떨리는 손으로 에델가르트의 허리를 쓰다듬던 벨레스는 에델가르트가 진정한 기색을 보이자 그제야 천천히 손을 떼어냈다.

"…슬슬 돌아가자."

고저 없는 평탄한 목소리였으나 그 속에 섞인 불안의 기색을 깨닫는다. 에델가르트는 본능적으로 그 미약한 불안을 인지했다. 그러나 괜찮냐고 묻기 위해 입을 여는 대신 그저 멀어진 선생님의 손을 조심스레 부여잡는다. 벨레스는 언제고 저를 거절하는 법이 없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벨레스의 손이 자연스럽게 감겨와 저를 담는다. 제게 주어진 이 짧은 온기에 만족하면서, 에델가르트는 천천히 고개를 세웠다.

"……그건,"

"지금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돼, 선생님."

때가 오면, 이 마음을 비롯하여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을 서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황녀는 말없이 제 선생님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잠시 맞잡은 손을 내려보던 벨레스가 에델가르트의 손에 똑같이 힘을 주며 응답한다. 소리없이 주어졌으나 그 무엇보다 확실하게 닿아오는 긍정의 뜻. 에델가르트는 저보다 약간 더 커 저를 꽉 담는 벨레스의 손을 기분 좋게 끌어안으면서, 작은 만족이 어린 비음을 흘렸다. 

에델가르트는 마음을 정했다. 벨레스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손이 저와 함께하는 동안은 그 어떤 벽이든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강한 직감이 저를 두드렸다. 과한 바람인 건 알아, 하지만 나는 선생님이 필요해. 선생님이 내 길을 따라온다면, 나를 지지해준다면 바라왔던 미래가 정말로 실현될 것만 같아. 

끝없는 자기 의심과 불확실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몇 번이고 울음을 삼키고 가슴을 두드렸다. 나약함으로 흔들리는 매 순간순간마다 저 스스로를 채찍질해 눈을 부릅 뜨고, 고통과 혼란으로 불타는 마음을 죽여 없애며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걸어왔고, 선택을 마쳤지만, 에델가르트는 제 불안과 부족함을 알았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 에델가르트를 정제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지지의 손길이 있었다. 몇 번을 돌아보고 가다듬어도 채워지지 않는 한 조각, 제게 주어질 것이라 결코 기대하지 않았던 마지막 한줄기의 어슴푸른 빛.

……당신은 항상 나의 선생님으로 있어줬으면 좋겠어. 내가 그 무엇이라도.

철갑과 같은 이성 너머로 울부짖는 마음이 널을 뛴다. 두 사람 외의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던, 달빛만이 그들을 눈에 담았던 어느 한밤을 헤쳐 지나가면서, 에델가르트는 조용히 희망을 노래했다.

 


……그 미미하고 가녀린 희망이 제 악한 동맹의 손에 물거품이 되어 무너질 것이라고, 제게 다가올 현실로부터 눈을 돌린 결과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19.10.12 


Posted by 까망베르 베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