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에델레스가 어떻게 밀월을 즐겼는지 깊은 고민 끝에 그만…
글을 찌고 만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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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델가르트님은 쉬셔야 합니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벨레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웃는 듯 웃지 않는 듯한 미묘한 표정의 휴베르트가 돌연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왔지만, 벨레스는 더 이상 그 검은 인기척에 놀라지 않았다. 5년의 부재 끝의 귀환과 가치 있는 동행으로 휴베르트는 결국 벨레스가 에델가르트의 견고한 날개임을 인정했다. 이전과 같은 의심 어린 음습한 적의와 늪과도 같은 진득한 경계는 어느 새인가 물처럼 흐려졌다. 더 이상의 위기감을 느낄 필요도 없어, 벨레스는 휴베르트의 이런 정적인 등장에도 별 다른 감흥을 가지지 못하게 됐다.
"이해 하시겠지만, 에델가르트님께 여유를 드리는 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해보지."
"…흠, 맡기겠습니다."
이전이었다면 제 주인의 안위와 관련된 사안을 이렇게 가볍게 부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허리를 가볍게 굽혀 인사함과 동시에 발소리조차 없이 물러가는 휴베르트를 응시하면서, 벨레스는 걸음을 돌렸다. 에델가르트를 보고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며, 다만 정무에 집중하는 황제를 방해하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 합당한 이유도 생기고 말았으니 정무실의 문을 두드려도 스스로를 책하지 않을 수 있다.
맑은 햇빛이 뒤덮은 고요한 복도 위를 담담한 발걸음으로 두드리며 벨레스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에델가르트가 전날 밤에 돌아왔던가? 달빛조차 가라앉은 희미한 새벽의 끝에 소리없이 내려앉던 키스를 기억한다. 잠결에도 그 부드러운 입술과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얼굴 위로 쏟아져내리는 창백한 하얀 머리칼을 웃으며 쓰다듬고, 숨죽인 목소리로 인사하던 그 입가에 되돌려줬던 키스를 기억한다. 한밤중의 짦은 기억이며 곧 잠에 빠져들었기 때문에 기억하려 해도 그 이상 떠오르는 것이 없다. 더군다나 벨레스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 옆자리엔 이미 온기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 들어와 언제 또 침실을 나선 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벨레스는 눈썹을 찌푸렸다. 순백의 존재를 쓰러뜨린 후 포드라 전역이 이제 막 안정화에 접어든만큼, 벨레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많은 일이 황제와 그 내각의 손에서 처리되고 있을 것이다. 사실 며칠 간 벨레스는 에델가르트의 얼굴을 제대로 본 기억도 없다. 끝없는 정무와 군사회의로 에델가르트가 바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
에델가르트의 정무실 앞에 발을 멈춘 후, 벨레스는 간단하게 문을 두드렸다.
"…누구지?"
진지하게 가라앉은 목소리. 황제의 관과 위엄을 걸친 무겁고 지배적인 분위기의 목소리다. 어린 학생일 때의 에델가르트도 진중했지만 기실 그것이 다분히 의도된 것이었다면, 어른이 된 에델가르트는 달랐다. 본인이 준비해온 황제의 책임을 짊어진 후 이제 에델가르트가 가진 진중한 위엄은 의도와 가장이 아닌 스스로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되었다.
"들어가도 될까?"
"선생님? 물론이야. 언제든."
다만 상대가 벨레스라는 걸 알면, 그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근엄함은 눈처럼 녹아 사라진다. 황제의 단단한 표정을 벗어내리고, 그저 엷은 웃음을 걸친 채로. 창살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을 뒤로 한 채 에델가르트가 일어섰다. 내내 들여다보고 있었을 서류 더미가 에델가르트의 손에 의해 옆으로 밀려났다.
"날씨가 좋아."
"그래, 그런 것 같네."
아무렇지 않게 짧은 안부를 주고 받으면서, 벨레스는 에델가르트의 책상 맞은편 의자에 허리를 내렸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한 채 둘은 잠시 서로의 눈을 들여다 봤다. 창가를 뒤로 한 채 등 뒤로 무너져 내리는 햇빛을 온몸으로 받고있는 에델가르트는 조금 빛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청명한 자색의 눈동자가 소리없이 환대를 발한다.
"…사실,"
"사실?"
"날씨가 좋아서. 같이 밖을 걷고 싶어."
"산책 말이야?"
벨레스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쁜 제안이네. 기꺼이."
에델가르트는 잠시의 주저 없이 즉시 몸을 일으켰다. 집무실 한켠에 걸려있던 망토를 어깨 위로 둘러 매면서, 몇시간이고 앉아있었을 의자를 정리해 넣는다. 흔쾌히 일어난 에델가르트를 따라 벨레스도 몸을 일으켰다.
***
둘은 정말 멀리 나오지 않았다. 수풀이 우거진 조용한 정원을 걸으며 두런두런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 기분 좋게 머리칼을 쓰다듬는 바람에 웃으며 몸을 펴고는 했다. 발 맞춰 걷는 대화의 끝에 둘은 햇빛을 피할 겸 잠시 그늘을 찾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거대하게 솓아오른 고목의 널찍한 그늘 아래 나란히 어깨를 붙이고, 말 없이 서로의 팔을 끌어안는다. 별다른 대화없이 서로의 숨결만이 잠식하는 이 고요함. 벨레스는 제게 기대어 앉은 에델가르트의 손을 조심스레 맞잡았다.
"…선생님의 심장 소리가 듣고싶어."
벨레스는 천천히 팔을 열었다. 에델가르트가 기대어오듯이 몸을 누이면, 그 등을 끌어안아 제 품으로 이끈다. 에델가르트는 종종 이렇게 벨레스의 심박을 즐기고는 했다. 어느 새인가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습관과도 같은 행위로 보통은 황제의 정복을 모두 벗어내린 침소에서나 하던 일이지만.
벨레스는 개의치 않았지만 에델가르트는 제 황제의 관이 혹여 벨레스를 불편하게 하기라도 할까 몇 번이고 몸을 움츠렸다. 자세를 미세하게 바꿔가며 몇 번인가 고개를 숙이더니 마침내 뒷머리를 벨레스의 어깨에 기대 몸을 눕힌다.
일정한 박자로 뛰어대는 심장에 맞춰, 그 평온한 리듬에 에델가르트의 숨결이 점점 가라앉아 간다. 벨레스는 에델가르트의 허리를 조심스레 끌어안은 채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관 아래로 빠져나온 에델가르트의 은백색 머리칼이 벨레스의 목가를 타고 흘러내린다. 간지럽기까지 한 얕은 감각에 작게 키득이면서, 벨레스가 입술을 열었다.
"잘 들리나?"
"…어느 정도는. 관만 아니었다면 더 잘 들었을 텐데."
"자세를 바꿀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벨레스는 제 품 안에서 퍼져가는 따뜻한 온기에 미소 지었다. 사실 벨레스도 이 자세를 풀고싶지는 않았다. 확신치는 않지만 그건 에델가르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제 팔 안에서 천천히 풀어지는 에델가르트의 몸을 느끼면서, 벨레스는 느긋하게 눈을 깜빡였다. 시원한 바람과 서늘한 그늘 아래의 이 평온한 휴식, 적어도 휴베르트가 믿어준 만큼은 잘 되어가고 있다.
벨레스는 높게 솟은 하늘을 바라보며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결코 쉽거나 편하다고 말할 수 없었던 길을 걸었다. 앞서나가는 등이 외롭지 않게.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발을 다그쳐 걸음을 맞췄다. 한 번은 끊어졌던, 그러나 지금은 그 무엇보다 견고하게 이어진 둘의 길. 함께 걸었던 끝에 벨레스는 어린 황녀의 선생에서 이해자로, 그리고 마침내는 이렇게 황제의 어깨를 받쳐줄 수 있는 반려가 되었다. 운명이나 숙명과는 상관없이 그저 벨레스 스스로가 택한 길이다. 단언컨데 에델가르트와 함께한 지금까지의 여정 중 단 한 걸음도 후회를 품지 않았다.
머지 않아 벨레스는 에델가르트가 잠든 것을 깨달았다. 침잠하여 가라앉은 숨결과 힘없이 안긴 몸은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게 기대어있었고, 약하게 흔들리는 고갯짓에 맞춰 황제의 관이 율동한다. 불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에델가르트를 깨우고 싶지는 않았다. 삐죽이 튀어나온 뿔을 피해 제 몸을 조절하고 품 안의 작은 몸을 더 안정적으로 껴안는다. 어느 정도 편안한 자세가 되었을 때, 벨레스는 차분한 숨을 흘려내면서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
"선생님."
"…아, 에델가르트……."
"미안해. 내가 잠들었었나봐."
"…불편하지 않았나?"
"그건 내가 해야할 말 같은데… 깨워줬으면 좋았을 텐데."
"별로 깨우고싶지 않았다."
얼마간을 잠들었는지 짐작조차 가질 않는다. 그러나 해가 많이 기울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리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지는 않았다.
벨레스는 제 팔 안에서 몸을 뒤척이는 에델가르트를 다시 한 번 끌어안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깊게 잠들지는 않았지만 잠깐 새 목이 잠겨있었다. 귓가에 와닿는 한숨에 에델가르트가 몸을 움츠린다. 소리없이 고개를 숙이는 작은 귓가는 붉게 물들어 달아올라 있었다.
이 익숙한 색채를 놓칠 정도로 무신경하지는 않았다. 그 붉어진 귓가를 잠시간 응시했다가, 벨레스는 의도적으로 에델가르트의 귓가에 입술을 붙이며 낮은 숨을 뱉었다.
"…엘."
"…아……."
부드럽게 몸을 덮은 팔을 통해서, 벨레스는 에델가르트의 작은 움츠림을 놓치지 않았다. 긴장으로 침을 삼키는 목덜미의 움직임과 급하게 숨을 삼켜 튀어오르는 몸짓까지. 마지막으로 관계를 가진 게 언제였더라. 무의식 중에 셈을 하면서 벨레스는 천천히 에델가르트의 뒷목에 입술을 내렸다. 건조하지만 부드러운 키스로 목덜미를 훑어내리고, 뒤따르는 숨결을 그 여린 살 위로 흩뿌린다.
그러자 에델가르트가 고개를 들어 벨레스를 돌아봤다. 창백한 피부가 붉게 달아오른 채 흔들리는 눈으로 벨레스를 찾는다. 그 동요하는 눈빛에서 제 것과 같을 경미한 흥분을 찾아내면서, 벨레스는 기분 좋게 입술을 핥았다. 에델가르트의 눈길이 벨레스의 눈에서 입술로, 그리고 붉은 혀를 따라 옮겨붙는다. 천천히 발화하는 욕망의 형태를 찾아 둘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연인이 된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벨레스는 서로에게 걸맞는 가장 적합한 애정의 형태를 알고있었다. 본능적으로, 무의식적이고 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교감의 가운데 벨레스의 손은 에델가르트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아 조금이라도 더 둘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엉겨들기 시작했다. 에델가르트의 두 팔 역시 자연스레 벨레스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둘은 서로를 가로막는 그 어떤 것이라도 용납하지 않을 것처럼 몸을 붙이고, 팔을 끌어안고, 다리를 맞추고, 허리를 비틀며 서로의 숨결을 열렬히 좇았다. 반쯤 짓눌러진 한숨과 거칠게 무너지는 호흡만큼이나, 생각의 여지조차 없이 입술을 맞추고 부드러운 살결을 따라 애정 어린 키스가 쏟아내렸다.
여린 입술을 가볍게 물어 재촉하듯이 핥아내리며, 벨레스는 천천히 숨을 흘렸다. 촉촉하게 젖은 입술로 무너진 호흡으로 신음하는 에델가르트의 턱가에 키스를 흘린다. 곧게 뻗어 흔들리는 창백한 목가를 따라 이어지는 키스를 쏟고, 꽉 틀어막힌 황제의 정복의 끝에, 경계에 걸쳐 쉼없이 오르내리는 창백한 쇄골 위에 더운 숨을 흘렸을 때 벨레스는 이제 거의 무너져가는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바라건데 그 굳게 다문 입술 너머로 감춘 열망을 들을 수 있기를, 심장 깊은 곳까지 눌러담아 울렁거리는 열락의 신음을 풀어낼 수만 있다면. 몇 번을 마주해도 감미로울 그 끝없는 정욕과 갈구를 끌어낼 수만 있다면. 심장이 아플만큼 강렬한 갈망의 앞에서, 벨레스의 달아오른 손이 황제의 옷자락을 파고들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살결을 파고들어 다급하게 그 부드러운 일부를 쓸어담았을 때, 벨레스는 저 못지 않은 기대와 열망에 찬 한숨과 신음을 들을 수 있었다.
"…그만."
하지만 이 얼마나 냉철한 황제인지. 붉게 달아오른 살결과 거친 호흡 속에서도 마침내 에델가르트는 벨레스의 손을 붙잡았다. 에델가르트는 뒤엉킨 채 무너져내린 제 몸을 추스르고, 벨레스를 천천히 밀어내면서 자세를 바로 잡았다. 스스로 목을 가다듬고 떨리는 숨을 집어삼키며 들춰올려진 옷자락을 부여잡는다. 흥분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몸을 천천히 세우며, 제 안에 파고든 벨레스의 손을 끌어당겨 내린다. 벨레스는 마지못해 힘을 풀며 에델가르트의 불안정한 얼굴을 실망스레 쳐다보았다. 아쉬웠지만, 에델가르트가 원하지 않는 행위를 지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벨레스는 점차 스스로를 회복해가는 에델가르트를 홀린 듯이 쳐다보며 손을 거뒀다. 시선은 마치 못 박힌 것처럼 에델가르트의 눈을 마주했는데, 그 흔들리는 자색의 눈동자 너머로 격류처럼 일렁이는 흥분과 열정이란. 그러나 그 모든 감정의 폭류 속에서도 에델가르트는 마침내 자신을 가다듬는 데 성공했다.
"…유감이지만, 슬슬 다시 일하러 가봐야해."
"…그렇구나."
벨레스는 막 꿈에서 깬 듯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몸 속 깊은 곳과 심장 너머에서 넘실대는 열렬한 열망은 아직도 흔들리며 발버둥 치고 있었지만. 에델가르트의 특출난 절제력은 그닥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동요하는 눈동자 너머 아우성치는 욕망과 갈망에 대조하여, 단정하게 자리한 그 굳어진 표정을 보았을 때에, 그 철저한 이성에 말없이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벨레스는 그 의사를 존중해 몸을 비키고 스스로의 몸가짐을 점검했다. …비록 속에서는 아직도 심장이 뛰쳐나올 듯 덜컹이고 있었지만. 에델가르트가 빠르게 황제의 위를 되찾는 만큼이나 벨레스의 열락도 차츰 잦아들어 귀애로 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배신하는 것처럼, 벨레스의 손이 에델가르트의 팔을 붙잡았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무의식적으로 이뤄진 행동이었다.
"선생님?"
"......"
"오늘 정말 무슨 일이야."
에델가르트는 떨리는 눈을 깜빡이며 조용히 웃었다. 가느다랗고 긴 엷은 은색의 눈꺼풀이 힘없이 흔들리며 요동한다. 에델가르트의 천천히 내려선 손이 마침내 제 미련이 남은 팔을 잡아 떼어낼 때, 벨레스는 가벼운 낙심에 빠질 뻔 했다.
"...갑자기 투정이라니."
마치 탓하는 듯한 어조였지만 에델가르트의 목소리엔 웃음기가 섞여있었다. 그 작은 웃음에 용기를 얻어 벨레스는 제 손을 붙잡은 팔을 약하게 끌어당겼다. 그러자 에델가르트는 마지 못해 끌려오는 것처럼 팔을 내주고 벨레스의 어깨 위에 두 손을 얹었다.
"…내가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웠지."
"…그렇지는 않아."
"정말?"
벨레스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 에델가르트 앞에서 돌연 그리움을 토로함으로써 서운함을 안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조용히 그 단정한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그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선생님."
"응."
"지금 꼭 억울한 강아지같은 표정으로 날 보고 있잖아."
"내가?"
에델가르트는 결국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즐거운 웃음을 흘렸다. 세상에. 불과 조금 전의 둘 사이에서 붙어오르던 강렬한 불꽃만큼이나, 그 자연스러운 웃음은 그저 아름다웠다. 벨레스는 스스로의 경탄에 빠져 마냥 웅얼대듯 작게 입을 열었다.
"…보내기 싫어."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그래."
어깨에 올라선 에델가르트의 손이 꼭 달래는 것처럼 벨레스의 볼을 덮었다. 가볍게 턱을 스치고 고개를 받치듯 움직인 장갑이 벨레스의 얼굴을 감싼다. 벨레스는 저를 감싼 에델가르트의 손등에 마주 손을 올리고, 조용히 고개를 기울여 그 손바닥에 키스했다. 위안을 구하듯 에델가르트의 손 안에 제 숨을 뱉고 코를 움직였다. 단정한 장갑 아래에 자리하고 있을 손가락 마디마디와 단단한 손등뼈 위에 코 끝을 문지른 다음, 제가 쥐어준 반지가 자리한 손가락에는 특히나 조심스러운 키스를 얹었다. 경애와, 기쁨과, 친애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더한 것보다도 큰 사랑을 담아서.
그 손 안에 얼굴을 묻으면서, 벨레스는 다시 입을 열었다.
"…보내기 싫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으나 벨레스는 제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에델가르트를 느낄 수 있었다. 천 너머로 전해지는 그 따뜻한 온기에 잠시 기대어 쉬었다가, 천천히 에델가르트의 눈을 올려다보았을 때, 벨레스는 들리지는 않았으나 그 무엇보다도 확실한 한마디를 느낄 수 있었다. 밤하늘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빛이 쏟아져내리는 것처럼, 깊은 애정의 속삭임이 에델가르트의 눈에서 별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랑해.
소리내어 말하지 않은 대답이었으나 이는 분명히 에델가르트에게도 닿았을 것이다. 둘은 말 없이 서로를 따라 그린 것 같은 웃음을 띄웠다.
"약속할게. 금방 돌아갈 테니까."
"기다리는 건 별로야."
"정말이야, 선생님."
속삭이는 목소리와 함께 에델가르트가 다시 한 번 벨레스의 어깨를 짚었다. 그리고는 차분히 고개를 숙여 벨레스를 응시한다. 허락을 구하듯 조용히 벨레스를 들여다보고, 고요하고 경건하게 벨레스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짧은 입맞춤과 함께 에델가르트는 희미한 웃음과 잔상과 같은 향을 남기면서 몸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벨레스도 에델가르트를 붙잡지 않았다.
"이따 봐, 나의 선생님."
느릿하게 눈을 감으면서 속삭이는 에델가르트는 아름답고 고결한 천사와도 같았다. 꿈처럼 따스하던 손길이 옅어지고 은자수와도 같은 아름다운 머릿결마저 멀어졌지만 벨레스는 입가를 빠져나오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충분한 휴식이 되었을까. 오히려 욕망에 취해 그 짧은 휴식을 무너뜨릴 뻔까지도 했다. 하지만 오늘은, 적어도 잠결에 취해 기억도 나지 않는 새벽에 에델가르트를 볼 일은 없겠지.
"이따 봐, 엘."
남아있는 시간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그 모든 시간은 에델가르트를 위해 존재할 것이다. 걸음을 맞춰 나란히 걸어온 시간 이상으로 둘은 같은 길을 걸을 것이고, 앞으로 걷게 될 모든 길도 에델가르트의 옆이겠지. 언제든.
그렇다면 조금 정도는 더 기다려 봐도 좋지 않을까.
- 19.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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