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up - FE3H2019. 10. 4. 22:35

사랑의 4단계,

1. 관심

 

 

 

 

 

 

 

 

사방으로 흩어진 흑수리반 일원들이 각자 훈련용 무기를 손에 쥔 채 연무장에 널리 퍼졌다. 제각각 기본 자세를 펼치고 여러번 스윙을 휘두르며 준비 운동을 하는 가운데, 에델가르트도 손에 쥔 도끼를 두어 번 휘둘렀다. 별다른 무게감 없이 도끼를 내리친 다음 가볍게 회수한다. 자루를 잡고 도끼를 제 팔 안에서 빠르게 몇 번이고 빙글 돌리면서, 거의 습관적으로 날을 위로 세운 도끼를 어깨에 늘어뜨린다. 비록 훈련용 무기라 하나 도끼 자체의 무게는 결코 무시할 수가 없을 터이지만, 에델가르트에게 이는 장난감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연무장 중앙에서 팔짱을 낀 채 모두를 훑어보던 벨레스의 시선이 얼핏 제게 머무는 것 같기도 하다. 에델가르트는 작게 헛기침을 하면서 풀어져있던 몸을 바로 세웠다. 오늘은 벨레스와 함께하는 첫 야외 훈련의 날이었다. 흑수리반은 그간 새로운 선생님의 지도 아래에서 짧게나마 적응을 마쳤다. 몇 번이고 반복되는 이론 수업 끝에 칠판을 두드리던 벨레스가 "오늘은 야외 수업이다." 라는 말을 뱉었을 때, 마침내 흑수리반 일원 사이에서 오가던 그 감탄과 흥분 어린 한숨들이란. 에델가르트는 벨레스의 실력을 직접 두 눈으로 지켜본 사람들 중 한명이었고, 따라서 이 새로운 선생님의 능력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다만 다른 흑수리반 학생들에게 이는 조금 다른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벨레스의 실력을 궁금해했고, 에델가르트가 담담히 증언하던 그 위용의 일부나마 엿보고 싶어 견딜 수 없어 했다.

"먼저 간단한 스파링을 하면서 기본기를 테스트 할 거야."

"혹시 선생님이 상대하는 거야?!"

"원한다면, 카스파르."

"물론 원하지, 선생님!"

카스파르가 당장이라도 뛰어나올 것처럼 도끼를 치켜 들었으나, 벨레스는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은 채 고갯짓으로 그를 물러나게 했다. 잠시간 흑수리반을 훑어내리던 시선이 다시금 에델가르트의 어깨 위로 내려앉는다. 착각이 아니라면, 이 새로운 선생님은 에델가르트를 첫 타자로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에델가르트."

역시나. 에델가르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어깨에 늘어뜨렸던 도끼를 한 바퀴 돌려 휘어잡은 후 천천히 벨레스의 앞에 자리를 잡는다. 자연스럽게 도끼를 쥔 채 벨레스를 마주하면서, 에델가르트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쉬며 도끼 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누군가 훈련용 검을 던지자 벨레스는 눈도 돌리지 않은 채 제게 날아온 무기를 채어잡는다. 무게감을 체크하려는 듯 제자리에서 검을 몇 번 휘두른 벨레스가 마침내 눈썹을 까딱이면서 에델가르트에게 눈길을 돌렸을 때, 에델가르트는 긴장으로 몸을 굳히면서 자세를 잡았다.  

"먼저 전력을 다해 공격해봐라."

"…당신을 얕보는 건 아니지만 정말 괜찮겠어, 선생님?"

"걱정 마라."

"선공을 내준다면 사양하지는 않겠어."

에델가르트의 자신감 넘치는 도전에 흩어져있던 일원들 사이로 휘파람 소리가 샜다. 카스파르 혹은 도로테아겠지. 에델가르트도 이 새로운 선생님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 어느 정도까지 싸울 수 있을지 시험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벨레스가 덤비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했을 때, 드디어 에델가르트는 발을 앞으로 딛었다. 짧은 기합성과 함께 온몸을 굳히고, 두 손으로 마주잡은 도끼를 머리 위로 들어올린다. 허리를 비틀며 내딛은 걸음을 추진력으로 삼고, 높이 세워 든 도끼를 온 힘을 다해 내리꽂는다. 마치 벨레스를 두 쪽 낼 것처럼 떨어져내린 공격은, 그러나 다음 순간 벨레스의 패리에 의해 허무하게 튕겨져 나간다.

제 무너진 자세를 간신히 추스리면서 에델가르트는 헛숨을 뱉었다. 여태껏 에델가르트는 제 공격을 이리 쉽게 쳐내는 사람을 보지 못 했다. 두 손이 얼얼할 정도의 충격과는 별개로 상대의 힘에 대한 경악과 의문이 싹을 틔우는 가운데, 벨레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에델가르트를 내려다본다.

"힘이 좋구나."

힘이 좋다고 한마디로 끝날 공격이었나? 지켜보던 급우들조차도 놀라 웅성일 정도로 에델가르트의 공격은 파괴력이 있었다. 그러나 담담히 말하는 벨레스의 표정은 일말의 변화없이 고요해 사람을 납득시키는 면이 있다. 

잠시간 에델가르트를 응시하던 벨레스가 손을 내밀었다. 에델가르트는 별 생각없이 벨레스의 손에 제 도끼를 넘겨주었다. 자연스럽게 도끼를 받아가는가 싶더니, 별안간 벨레스가 한걸음 앞으로 다가선다. 에델가르트의 손을 휘어잡아 손가락을 감싸쥐더니 눈 깜짝 할 새 손목을 타고 올라가 팔꿈치를 눌러잡는다. 자연스럽게 팔꿈치를 타고 올라와 노니는 손길은 거리낌없이 에델가르트의 팔목을 부여잡고, 여린 살결을 누르며 맴돌기 시작했다. 벨레스가 제 팔을 잡아 옷 너머로 살을 꾹꾹 누르는동안, 에델가르트는 거의 얼음처럼 선 채 굳어졌다. 믿기지 않는 행위에 경악하는 것도 잠시, 에델가르트는 본능적으로 벨레스의 손을 잡아 떼어내며 날카롭고 매서운 눈으로 제 선생님을 들여다보았다. 

그제서야 벨레스가 손을 떼어놓는다. 그 순간 에델가르트는 이 무표정한 선생님의 잔잔한 눈 너머로 스쳐가는 낭패한 기색을 읽을 수 있었다.

"…실례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과는 별개로, 벨레스는 불안한 눈치로 두 손을 어정쩡하게 들어올리면서 목을 가다듬었다. 묵직하니 가만 서있던 몸은 안절부절하지 못한 기색으로 흔들리고 동요없던 목소리가 가볍게 떨린다. 황족의 지위도 있어 에델가르트는 제 몸에 다가드는 이런 거리낌없는 접촉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 누가 황녀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댄단 말인가. 더군다나 에델가르트는 남과의 접촉에 대한 극심한 거부감을 가지고있었다. 그녀의 살 위로 가로새겨진 상처의, 아직도 이 몸에 남아있는 듯한 그 저주받은 끔찍하고 차가운 고통들. 타인과 접촉했던 매 순간마다 에델가르트에게 남던 것은 결국 가슴을 찢어발기는 슬픔과 결코 아물지 않을 흉터 뿐이다.

"…미안하다."

어리숙하지만 점잖은 사과에 에델가르트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냐. 하지만 왜 이랬는지 설명해줄 수는 있겠지?" 

목소리에 날을 세우지 않으려 집중하면서 에델가르트는 느릿하게 목을 가다듬었다. 사실 그 급작스런 접촉에 놀란 심장은 아직도 쿵쾅대며 아우성치고 있었다. 에델가르트의 노력을 안 듯, 벨레스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연다. 

"확실히 너는 힘이 좋다. 근육이 어떤 식으로 붙었는지 확인하려 했을 뿐이다."

에델가르트는 저도 모르게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저를 추행하려 하거나 뭔가 다른 의도가 있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저 담담한 얼굴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그저 궁금할 뿐이야.

"…선생님이 용병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그리 놀랍지는 않아. 다만, 다음에는 조금 조심해줘."

"명심하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끝맺은 후, 벨레스가 다시 한 번 에델가르트를 응시한다. 맞붙어 오는 시선을 피할 이유도 없어 에델가르트가 그 푸른 눈결 속으로 말없이 빠져들어갈 때, 미지근하게 따라붙는 심박 소리가 귓가에 메아리 치기 시작했다. 저 담담하고 감정없는 눈길, 잔잔한 바다만큼이나 고요한 파도 속으로 침잠해 흔들릴 수 있다면. 깊고 검은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는 그 의미 모를 것들을 들여다 보고싶어. 

 

……당신을 더 알고싶어. 

 

에델가르트가 그 푸른 눈동자와 제 생각 속에 잠겨있는동안, 벨레스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분명한 웃음도, 흐릿한 미소도 아니었지만 쳐다보는 이까지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그 은은한 마법이란.  

"더 알아보고 싶은 게 있는데 한 번 상대해줄 수 있을까?"

"물론이야, 선생님."

에델가르트는 선뜻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자세를 잡았다. 돌려받은 도끼를 다시 잡아 늘어뜨리면서 다리를 벌린다. 이번에는 조금 전처럼 전력을 다해 공격할 생각이 없었다. 상대해달라는 말은 몇 합이고 교환해 공방을 나누자는 말이다. 이제는 에델가르트 자신도 벨레스의 공격을 받게 될 지도 모르지. 

"잘 부탁하지."

벨레스의 말을 신호 삼아서, 에델가르트가 호쾌하게 선수를 취했다. 옆구리를 쳐낼 것처럼 휘둘러 들어간 도끼가 가벼운 블로킹에 막혀 비껴간다. 반발력에 개의치 않고 도끼를 빼내 찍어내린다. 마찬가지로 두 번째 공격도 벨레스의 방어에 의해 단단하게 막아 쳐내졌다. 제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굳건히 공격을 쳐내는 벨레스의 움직임은 호승심을 자아내는 무언가가 있었다. 극도로 숙련되고 단련한 나머지 불필요한 움직임은 모두 삼간 채, 기계적으로 나타나는 가장 효율적인 동작들. 벨레스의 자세를 무너뜨리기 위해 몇 번이고 맹공을 휘몰아치면서 에델가르트는 입가에 기분 좋은 웃음을 띄웠다.  

제 힘을 이 정도로 받아내는 상대는 여태껏 만나보지 못했다. 철벽과도 같은, 태산과도 같은 단단함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공격이든 무위로 돌리는 이 유려한 걷어내기란. 티끌의 낭비조차 없이 극도로 정제된 힘으로 하나하나의 공격을 쳐내고 잘라내는 벨레스의 움직임은 경탄을 자아낼 정도로 깔끔하고 우아하기까지 했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 하나하나엔 놀랄 만큼의 힘과 경험이 녹아있어, 에델가르트는 그 모든 상대의 합에 어우러져 무아지경에 빠진 듯 몸을 움직였다. 휘두르면 걷어내고, 내리찍으면 이를 쳐낸다. 막기 어려울 것 같은 공격은 민첩하게 몸을 돌려 피하고, 뒤따라붙는 연격에 검을 마주해 상쇄하면서 벨레스가 에델가르트를 응시한다. 맞부딪쳐 날카로운 소리를 토해내는 검과 도끼의 너머로 서로의 열띈 시선을 주고받으며 에델가르트는 재차 기합을 뱉었다. 정체 상태에 부딪쳐 머물러 선 검을 힘으로 밀어버리기 위해 칼날을 마주한 도끼에 더욱 압력을 가한다. 더 강한 무게를 싣기 위해 땅을 단단히 딛고있던 발을 떼어냈을 때였다.       

벨레스의 눈이 이채를 발하는가 싶더니 맞부딪쳐 교착하던 검이 부드럽게 뒤로 빠져나간다. 온힘을 다하고있던 에델가르트의 몸이 빨려들어가듯 앞으로 쏠려나가고, 곧이어 중심이 무너진 다리 사이로 벨레스의 발이 들어섰다. 

순식간에 무너져내리는 몸을 바로 잡지 못한 에델가르트가 도끼를 놓쳤다. 눈 깜빡할 새에, 하늘과 땅이 반전된 채 시야가 뒤집어진다. 맥없이 자세가 무너져 쓰러져 내리면서, 에델가르트는 눈을 크게 뜬 채 벨레스를 향해 저도 모르게 손을 내뻗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벨레스는 응답했다. 내뻗어진 손을 잡고, 바닥으로 떨어져내리던 에델가르트의 허리를 자연스럽게 끌어안는다. 민첩하게 에델가르트를 받아낸 벨레스가 에델가르트를 또렷히 내려다본다. 벨레스의 팔 안에 허리를 받쳐진 채 반쯤 쓰러져 안겨있으면서, 에델가르트는 저를 붙잡은 손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힘을 주며 마주 잡았다. 놀라 집어삼켰던 한숨이 터져나오고, 크게 뜬 채 굳어있던 눈이 안도로 내리감긴다. 

등 뒤로 뻗어나가는, 저를 단단히 받치고 있는 팔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안심하면서 에델가르트는 천천히 벨레스의 눈을 마주했다. 안정적으로 깜빡이는 벨레스의 바다와 같은 눈, 그리고 천천히 내리감기는 긴 속눈썹, 땀 한방울 없이 건조하게 메말랐으나 더 없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낯에 제가 담긴다. 고요하게 가라앉는 호흡 안에서 서로 몸을 맞춘듯이 기대어 벨레스의 눈을 들여다본다. 모든 것을 수용할 것처럼 깊고 어둡지만, 그러나 외롭고 차가운 물결은 아닌, 조용히 파도치는 맑은 밤과 같은 바다. 에델가르트가 마치 밤바다의 품에 온전히 안긴 것 같은 포근함의 여운에 취하는동안, 벨레스의 입꼬리가 천천히 호를 그렸다.

"실수, 실례했다."  

착각으로 느껴질 법한 그 짧은 웃음기는 곧 벨레스가 에델가르트를 일으켜 세워주면서 사라졌다. 놀라 넘실대는 심장 너머로 불안정하게 어긋난 호흡을 내뱉으면서, 에델가르트가 고개를 젓는다.

"…괜찮아. 넘어지지 않게 잡아준 거잖아."  

제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에델가르트는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잠깐 새에 안겼던 그 팔의 온기와, 절대 그녀를 내버리지 않을 것만 같던 굳건한 단단함이 아직도 제 허리에 남아있었다. 안긴 품 안에서 어렴풋이 새어나오던 청량한 향기와 그리고 그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잔잔한 파도가 넘실대는 평온한 바다의 눈. 허리를 곧추세우고 몸을 바로 하면서 에델가르트는 조심스레 눈을 깜빡였다. 격한 스파링을 했던 탓인지 심장이 무서울 정도로 뛰고있었다. 저를 붙잡아줬던 손의 온기를 쫓듯 제 빈 주먹을 쥐었다가, 한숨과 함께 풀어낸다. 

"다치진 않았나? 얼굴이 붉은데."

"…아, 괜찮아. 고마워, 선생님."

벨레스가 산뜻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들여다보듯 관찰하는 눈 앞에서 허리를 꼿꼿히 세운다. 심장이 미친듯이 뛰는 것을 제외하고는 에델가르트는 실제로 털끝 하나 다친 곳이 없었다. 학생이 다치지 않은 것이 맞나 머리부터 발 끝까지를 훑던 벨레스의 눈길이 한바퀴를 돈 끝에 다시 에델가르트와 마주한다. 왜인지 모르게 그 눈을 피할 수가 없어 사로잡힌 것마냥 응시한다. 에델가르트의 새 선생님은 어딘가 흥미로운, 눈을 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벨레스가 천천히 손을 들어 에델가르트의 이마를 짚는다. 고개를 갸웃하며 에델가르트를 내려다보더니 어느 새인가 흘러내린 은백색의 머리카락을 귀 너머로 부드럽게 넘겨준다. 막으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겠지만, 에델가르트는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다만 점차 거세지는 제 심장 소리에 놀라 멍하니 생각했을 따름이다. 입 밖으로 심장을 뱉을 것 같다고 하는 말들을 이제는 이해하겠어. 

"…인상적이었다. 잘했어."

에델가르트가 무너진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푸는동안, 조용히 둘을 지켜보던 일원들이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휴베르트가 손수건을 내밀고, 모두가 대단했다며 하나둘 입을 열며 칭찬하는 가운데 에델가르트는 조용히 옅게 땀이 맺힌 제 이마를 훔쳤다.  

"선생님! 다음은 내가 부탁해도 될까?" 

페르디난트가 손을 번쩍 들어 끼어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에델가르트는 천천히 발걸음을 뒤로 옮겼다. 차례가 바꼈음을 안 흑수리반 인원들이 다시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멀어지고, 에델가르트는 그들 모두를 뒤로 한 채 연무장의 구석으로 가 벽에 등을 기댔다. 팔짱을 끼고 스파링 준비를 시작하는 두 사람을 멀거니 쳐다보는 새에, 가벼운 인기척이 옆에 와닿는다.

"정말 멋졌어, 에디."

"……도로테아."

연무장의 한 가운데에서 창과 검을 섞고있는 두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에델가르트는 벨레스의 모든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직접 무기를 맞대는 것이 물론 제일이지만. 멀리서 여유롭게 관찰하는 것도 상대의 실력을 분석하기 좋은 기회 중 하나다. 다만 그런 에델가르트의 집중은 제 옆에서 키득이는 작은 웃음소리에 곧 산만하게 깨어져 나갔다.

"사실 나는 둘이 키스하는 줄 알았는데."

"……키, 뭐……?"

"에디가 선생님한테 안겼을 때. 둘이 얼마나 오래 쳐다보고 있었는지 몰랐지?"

"……."

에델가르트는 상상도 못한 발언에 말을 잃어 소리없이 입을 여닫았다.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소리가 되어 나오는 것은 하나도 없다. 도대체 어떻게 선생님과 저를 그렇게 바라본단 말인가. 키스? 키스? 에델가르트는 제 옆의 도로테아를 휙 올려다보고, 그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내 경험에 의하면 보통 그럴 때엔 자연스럽게 키스하게 되거든."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아니, 아니야."

"정말?" 

"절대 아니야, 도로테아. 선생님과 나를 그런 망상에 엮지 말아줘." 

"……흐음, 그렇단 말이지?"

도로테아의 잘게 쪼개진 웃음기가 마디마디마다 흩어져나와 에델가르트를 뒤흔들며 울려퍼졌다. 느닷없이 들어온 한마디에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팔짱을 풀어내리면서 에델가르트는 그저 소리없이 고개를 저었다. 자리를 피하듯이 도로테아로부터 벗어나면서 연무장 중앙의 벨레스를 흘낏 쳐다보자, 마치 짜맞춘 듯이 순간 눈길이 맞았다. 대련 중에 어찌 한눈을 파는가 하는 의문은 차치하고서. 에델가르트는 화들짝 놀라 데인 듯이 눈길을 피했다. 

부러 먼 곳을 쳐다보며 주의를 돌리는 것도 잠시. 곧 페르디난트가 내뱉는 비명소리가 연무장을 가득 메웠다. 놀라 눈길을 돌리자 바닥에 아무렇게나 엎어져 고통으로 신음하는 페르디난트가 눈에 들어왔다. 페르디난트를 내던졌음이 분명한 벨레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든다. 이번에도 다시 눈이 맞았다. 에델가르트는 입술을 깨물며 페르디난트와 벨레스를 돌아봤다. 에델가르트와 달리, 이번에 벨레스는 페르디난트를 잡아주지 않았다. 등으로 착지한 터에 고통으로 몸을 트는 페르디난트의 모습에서 채 눈을 떼어내지 못하며, 에델가르트는 제 귓가를 두드리는 도로테아의 목소리에 재차 입술을 깨물었다.

"벌써부터 누가 선생님의 애제자인지 알겠는걸?"

다시 한 번 심장이 요동했지만, 이번에는 격한 스파링의 탓이라 둘러댈 변명조차 없었다. 





-19.10.04




Posted by 까망베르 베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