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up - SNJS'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8.09.17 45 & 9 & 416 - 3P
  2. 2018.09.17 로스타 - 관계의 재정의
  3. 2018.09.17 엠포스타 - 단절
2018. 9. 17. 02:52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Backup - SNJS2018. 9. 17. 02:48


"직접 해보고 싶다는 건 아니겠지?"

AR 15가 말을 끝맺음과 동시에, RO의 눈이 더 이상 없을 정도로 크게 뜨였다. 정면으로 드러난 당혹을 감추지도 못한다. RO는 이전보다 더욱 심하게 허둥대며 몸을 가누지 못하더니 드디어는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제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불안정한 눈빛이 그녀의 방 안 사방으로 튀고, 얼마 안 가 AR 15의 앞으로 흐른다. AR 15는 눈을 피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RO와 곧바로 시선이 맞닿았다. 그녀가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며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자, RO가 은근슬쩍 손을 내린다.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한 듯 꼿꼿이 허리를 세운 RO가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부탁할……, 아니, 역시 아니야."

마음의 준비는 곧바로 허물어진 게 분명하다. RO는 좌절한 듯 허탈하게 고개를 숙였다. RO가 어떤 마음으로 그녀의 방에 찾아온 것인지 이제야 짐작이 가게 되었다. AR 15는 RO의 놀라울 정도의 결단력에 가볍게 감탄했다가, 반대로 끝에 다다라서 나타나는 자신감 없는 태도에 한숨을 내쉬는 자신을 발견했다. 사실 그녀 입장에선, 섹스라는 게 별 다른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강제로 취하려 드는 것도 아니고 하물며 허락을 구한다라. 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신선한 느낌에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돌연 M4의 생각이 봇물 터지듯 흘러들어온다. 동시에 어떤 탁류가 그녀의 가슴께를 두드리며 넘실대기 시작했다. 코어를 쥐어 터뜨리는 듯한 압박감에 놀라 숨을 내쉬었지만 기도는 멀쩡하다. AI가 계산하지 못하는 이 정체 모를 답답함, 그녀는 제 속을 찔러대는 바늘과도 같은 아릿함이 불쾌해졌다. 서둘러 고개를 젓고 이 모든 것을 떨치듯이 손을 뻗는다. 그렇게 RO에게 가볍게 손짓하면서, 드디어 한마디를 뱉었다.

"이번 한 번 뿐이라면, 좋아." 





-





이후 RO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녀는 손을 뻗어 RO를 붙잡았고, 조금 다급한 기색으로 제 몸을 맡겼다. 그녀의 마음이 느닷없이 변화한 만큼 RO 역시도 급변한 상황에 잠시동안 갈피를 잡지 못했다. RO는 끝끝내 허락을 구하듯 AR 15의 얼굴만 몇 번이고 돌아보다가, 거의 얹듯이 제 손을 그녀의 어깨 위에 올려두었다.

"…뭐하는 건데?"

"…아……."

재미있는 것은 AR 15가 모처럼 마음 먹은 것과는 달리, 그녀와 호흡을 맞춰야 할 RO가 거의 동상이 된 채 얼어붙었다는 사실이다. RO는 끝없이 AR 15의 눈치를 보면서 1초에 1cm씩 손을 움직였다. 그 느릿느릿하고 답답한 손길은 애무도 뭣도 아닌데다가 무겁고 갑갑하기만 할 따름이다. AR 15는 결국 이 모든 상황을 자신이 리드해야 한다는 걸 인지했다. 이 모든 일을 설명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건가, 아연실색한 그녀가 헛숨을 턱 뱉자 화들짝 놀란 RO가 손을 떼어낸다. 결국 그녀는 조용히 RO의 손목을 틀어잡았다. 힘주어 손을 들어, 제 가슴 위에 끌어놓는다. 민망하다거나 부끄럽다는 느낌은 일지조차 않는다. AR 15의 가슴 위에 내려앉은 손을 바라보는 RO의 얼굴이 오히려 더욱 빨갛게 달아올랐다. RO는 엉거주춤 올라앉은 제 손을 잠시간 꼬물거리다가, 마치 간을 보듯 느릿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녀는 새어져나오는 한숨을 막지 않았다. 

"…하아……. 안 말릴 테니까, 마음대로 해."

"으, 응……."

못 미더운 대답과 동시에, 드디어 RO가 그녀의 원피스 끈을 부여잡았다. 주저하는 손길은 눈치를 보듯 몇 번씩 멎었지만 결국엔 AR 15의 옷을 벗겨내는데 성공했다. 장족의 발전이라 해야 할까. 과도할 정도로 느린 진행에 그녀가 채 내쉬어지지 않는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예고없이 RO의 손길이 멈췄다. 손길이라 해도 그녀의 피부를 조심스레 쓸어내리던 약간의 접촉이 전부였지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그녀는 천천히 RO의 눈을 찾았다. 확연한 떨림을 간직한 두가지 색의 눈동자에선 긴장과 흥분, 이유 모를 공포마저 느껴지는 듯 하다. 그녀가 관찰하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RO가 황망한 눈으로 AR 15의 맨몸을 훑어내렸다. 그러다가는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

제일 먼저, 균형이 무너져 다소 가빠진 호흡이 와닿았다. 돌연 제게 안긴 RO를 어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AR 15가 어정쩡하게 굳어져있는 때였다.

"…AR 15 너는 이런 게, 아무렇지도 않아……?"

작은 목소리로 저어하는 물음이 주어졌다. 오늘 제시된 RO의 질문은 모두 핀트가 어긋난 뜻 모를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의미없고 허한 단어와 문장들 사이엔 미세하게 새어나오는 진심의 끝자락, 숨겨진 꼬리들이 있다. 이제 그녀는 RO에게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무엇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뿐이다. 거기에 응대해줄 이유도, 필요도 없다. 하물며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더욱.

"…아무렇지도 않아."

섹스가 필요하다면, 그저 어울려줄 뿐이니까.

RO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올린다. RO가 원하던 답을 찾았는지 아닌지 AR 15로서는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짧은 문답을 끝으로, RO의 눈빛이 뒤바뀌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주저하던 손짓에서는 이제 더 이상의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RO는 가장 먼저 그녀의 어깨를 매만졌다. 차갑게 식어내린 인공 피부를 덥히며 내려앉는 따뜻한 손길은 마치 위로하는 듯이 그녀의 맨몸을 품어 안는다. 잠시 잠깐 어깨를 두드렸다가, 도드러져 나온 쇄골을 지나치듯 손가락 끝으로 짚어내린다. 빈 도화지에 점을 찍는 것처럼 산발적으로 난발하는 애무 사이로 AR 15의 몸이 눕혀졌다. 아프지 않게 그녀를 내리누르는 힘에선 어떠한 결단과 각오마저 느껴지는 듯 하다. 

그 모든 손길은 확실히 미숙했다. 어디를 어떻게 어루만져야 상대가 흥분할 수 있는지, 느끼게 할 수 있는지 어느 하나 잘 알지 못 하는 어리숙한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황급히 이어지는 욕망과 열기만은 그녀의 피부로 홧홧하게 와닿아 등골을 쩌릿하게 하는 기분을 선사했다. 이렇게나 그녀를 원하고 있다는, 상대의 그 열망과 욕구의 발현은 AR 15 그녀 자신에게 묘한 충만감을 안겨주기 충분했다.

가슴 위를 짚었다가 그 언저리를 눌러내리며 희롱하듯 유영하는 손가락과, 그녀의 몸 구석구석에 상냥하게 닿았다 떨어지는 부드러운 키스들. 아프지 않게 살점을 깨무는가 싶더니 그 위로 뜨거운 숨이 뱉어내린다. 콧날로 목을 타듯 쓸어내리고,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운 혀가 피부 위를 노닐며 몸을 긴장시킨다. 혀로 핥아내린 그 자리를 뒤따라 마른 입술이 살을 축이며 지나쳐 그녀의 쾌감을 이끌었다. 그 모든 것들이 차분히 내려앉아 마침내 AR 15의 중점까지 와닿았을 때, 그녀는 빈 말로도 자신이 흥분하지 않았다 할 수 없으리라 깨달았다. M4가 제공하는 자극적이고 열락에 가득찬 무언가는 없었지만, RO의 애무는 분명한 효과가 있었다. 온몸이 간질거리고 아래 부근이 묵직하게 달아올랐다. 닥쳐올 희락을 아는 AR 15의 몸은 이미 스위치가 올라간 채 주어질 자극만을 기다리는, 가련한 사냥동물과 다를 바 없게 되었다. 

RO의 진중한 눈빛이 그녀를 꿰뚫듯 꽂혀온다. 긴장으로 잔뜩 굳어진 낯과 허락을 구하듯 저를 들여다보는 눈빛. 그 모든 낯선 시선에 AR 15는 몸을 가누기 힘든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식으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섹스해왔던 적도 없었고, 또 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와서도 제 의사를 되묻는 친절함과 접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익숙지 않은 교류에 마음이 조급해져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RO의 부자연스러운 태도가 꼭 그녀를 시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RO와 접하는 모든 행위 자체가 낯설고 기이한 감각을 낳았다. 그녀는 이 불온한 느낌을 무어라 정의해야 할 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 관계 이후로 많은 것이 변화하리라는 것만은 확실히 깨달았다. 어쩌면 RO와 섹스하겠다 한 AR 15 그녀의 선택은, 오만이었을지도 모른다…….

"…손가락, 넣을게."

"…일일이 보고하지 마……."

RO의 손가락이 잔뜩 달궈진 몸을 관통한다. 좀체 입구를 찾지 못하고 얕게 헤매이던 손가락은 마침내 출입구를 찾자마자 지체 없이 그녀를 파고들었다. 잔뜩 열에 올라 조심성이라고는 없는 투박한 손가락질은 RO답지 않게 성급하고 조급한 기운이 가득했다. RO의 시선이 AR 15를 향해 내리꽂힌다. 정작 삽입을 한 건 자신이면서, 꼭 본인이 받는 입장이라도 되는 양 한껏 커진 눈동자에서는 채 가릴 수 없는 희열이 넘실거리고 있다. 열망과 욕망의 눈빛과 동시에 기이하게 반짝이는 RO의 탐구욕 앞에서는, AR 15도 결국 작게 헛웃음을 내지었다.

"…아……. 생각보다 엄청 좁아……."

도대체 왜 이런 말을 듣고있어야 하는 거지? 그녀는 딱딱하게 굳어가는 제 낯을 알았지만 이를 가리지 않았다. M4와 섹스하며 단 한 번도 불필요한 말을 주고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주어지는 상대의 세심한 감상은 그저 부담스러울 따름이다. 잠시간 RO를 지켜봤지만 딱히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저 손가락을 움직이며 그녀 내부를 느끼는 데 몰입하는 모습만이 전부다. 한껏 집중한 채로 시선마저 느끼지 못한다. 열심히 그녀의 아래를 매만지는 맹목적인 접촉엔 어미를 따르는 새끼동물과도 같은 필사적인 분위기마저 있었다. 

AR 15가 기다리던 자극적이고 적극적인 움직임은 없었지만, 그러나 어찌 되었든 양껏 달아오른 몸이다. 그녀는 슬슬 RO의 손짓에 몸을 맞춰주기로 했다. 느릿하고 단순하게 찔러오를 뿐인 손목의 움직임에 따라 허리를 움직인다. RO의 직선적이고 체계적인 움직임은 이성을 등진 채 그저 파괴적 열망을 따라 날뛸 뿐인 M4와는 확연히 달랐다. AR 15는 기분 좋고 포근하게 저를 감싸안는 따뜻한 신체적 접촉에 작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단언컨데 이 모든 것은, 이 감각들은 그녀가 아는 섹스와 다르다. 

그때였다. RO의 움직임이 돌연 뒤바뀌었다. 잠깐 한 눈을 판 것일지도 모르고 다른 생각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은 제쳐두고, RO의 손가락은 엇박으로 어긋나 엉뚱한 곳을 찔러 튀어올랐고, 아주 우연히도 그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포인트를 짚는데 성공했다. 

"…하, 으읏!"

피차 익숙지 못한 관계이고, 가르쳐주겠다는 의도로 앞장선 만큼 딱히 신음을 참거나 해서 반응을 억누를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티나게 몸을 튕길 생각도 없었다. AR 15는 참담한 심정이 되어 얕게 몸을 떨었다. 그녀의 새된 신음 이후 우뚝 멎은 손가락에 차마 RO를 쳐다보지도 못하겠다. 차라리 멈추지 않고 계속 되기라도 했다면 괜찮았을 텐데. 그러나 언제까지 시선을 피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어내며 조심스레 RO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 잔뜩 놀란 얼굴, 순진하기까지 하던 호기심의 낯은 이제 완전히 뒤바뀌어 있다. 일렁이는 눈망울 너머로 RO의 흥분과 감탄이 엿보였다. 입술을 작게 벌린 채 넋이 나간 것처럼 눈을 빛내는 RO가 희미한 미소를 띄어올린다.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에 가득 차 잘게 떨리는 입술 사이로는, 열망으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AR 15…… 너, 진짜 섹시해……."

"……."

그녀의 얼굴이 삽시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이런 순수한 감탄사는 여태껏 받아본 적도 없었고, 기대한 일도 없었다. 역시 섹스 중엔 이런 쓸데없는 말은 안 하는 게 좋겠어. 영 다른 생각으로 제 민망한 감정으로부터 도망하려 했지만 효과가 있을 리가 없다. 어찌되었든 RO는 AR 15의 모든 반응으로부터 제가 성공했음을 읽어내는데 성공했다. 작은 감탄 이후로 RO의 손가락이 영민하게 다시 짓쳐들었기 때문이다. 이전처럼 헤매이지조차 않았다. 그녀의 스팟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맴도는 움직임과, 춤추듯 가슴을 짚는 자연스러운 모든 손짓에 결국 AR 15는 다른 생각을 포기하게 되었다. 유영하듯 정점을 튕겨올리는 손가락에 움찔 놀라 허리를 비튼다. 부드럽게 가슴을 쥐어 기분 좋게 누르는 손바닥의 움직임엔 한숨마저 나왔다. 계산한 듯, 계산하지 않은 듯 유기적으로 단계를 올려가며 다가드는 손길이 마치 하나의 몸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모든 신체적 반응과 신호를 읽어내어 차례차례 정복해나가는 이 영리한 포식자 앞에서 어찌 저항할 수 있을까. 

"…하, 아……."

격한 섹스에 단련된 몸은 이 섬세한 접촉으로는 쉽게 절정에 이르지 않는다. 그러나 정신을 잃을 정도로 격한 오르가즘 끝에 몸부림 치는 것만이 섹스의 전부는 아니었다. 온몸을 메우는 충족감과 뭉근한 성감에 몸을 움츠렸다가, 몸 끝에 힘을 주며 작게 요동한다. 잘게 떨리는 몸을 수습하지 않는다. 끝에 살짝 못 미치는, 그러나 분명한 절정. AR 15는 저를 껴안은 채 쓰러져내리는 RO를 느꼈다. 기분 좋은 만족감과 타인이 선사하는 체온에 말 못할 위안감을 품는다. 그것은 그녀 안에 내재된 미약하고 분명한 나약함이었으나, AR 15는 이를 채 깨닫지 못했다.

"…아아, 힘들어."

"…무거워. 슬슬 비켜줘."

깊은 움직임으로 둘 다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정리되지 않은 호흡만 번갈아 주고받다가, 결국 AR 15는 RO의 어깨를 약하게 밀어냈다. 섹스는 끝났다. 그러나 한 번 서로의 가장 깊숙한 곳에 발을 들였기에 RO와 AR 15 둘 사이의 관계는 달라졌다. 그녀는 제 바로 옆, 목덜미 아래에 뜨겁게 내쉬어지는 RO의 숨결이 전혀 불쾌하지 않다는 부분에서 새삼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와 RO는 이제 몸을 나눈 관계가 된 것이다.

나른한 피곤함을 즐기고 있는 사이에 RO의 손이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복부를 쓰다듬는다. 애무라기보다는 그냥 의미없는 손장난이라 부르는 게 맞을 것이다. 말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작게 숨을 내쉬는 데에만 집중했다. RO의 작은 어리광을 받아주자 뒤이어 기분 좋은 듯한 웃음이 귓가로 와닿는다.

"…여태까지 네가 사랑스럽다 생각해본 적은 없었거든. 근데 오늘부턴 아닐 것 같아. 너, 섹스할 때는 정말 다르구나."

이 짓궂은 말엔 AR 15도 눈을 뜨지 않을 수가 없다. 몇 번 봐줬더니 맹랑하게 맞먹으려 드는구나. 그녀는 제 배 위를 탐험하는 손을 붙잡아 떨어뜨리며 헛웃음을 뱉었다.

"…다 했으면 이제 그만해."

불퉁하게 쏘아붙이는 목소리엔 일종의 경고의 의미까지 담겨있다. RO 역시 이를 알아 제 손을 뒤로 물렸다. 뒤이어 침대보를 구기며 몸을 일으킨 RO가 제 옷자락 사이에서 손수건을 꺼내어든다. 뭘 하는지 싶어 그 뒤를 따랐지만 이유 없는 행동은 아니었다. RO는 아무렇지 않게 그녀가 남긴 흔적들을 지우기 시작했다. 조심스레 제 밑을 닦아내리는 촉감에 저항없이 몸을 맡긴다. 오늘의 이 관계가 그녀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 지 아무 것도 짐작할 수 없었지만, AR 15는 지금 이 순간 작게 만족하는 자신이 있음을 알았다. 관계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저 이것으로 된 거겠지. RO는 호기심을 충족하려 했고, AR 15 그녀는 그저 동료를 향해 호의를 베풀었을 뿐이다. 

잠깐의 텀은 있었지만 결국 다시 저를 향해 따라붙는 손길이 있다. 옆구리와 허리를 감싸며 아무렇지 않게 파고들어온 두 팔이 그녀의 몸을 끌어당긴다. 저를 반쯤 품에 안은 채 RO가 고개를 기대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른하고 피곤하니까 굳이 떼어내지 않도록 할까. 따뜻한 체온에 의지해 몸을 내어주면서, AR 15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17.10.16


내용은 이전글인 '엠포스타 - 단절'과 이어지고 있어요.


너무 길게 써져서 그냥 씬만 컷함.

풀버전 : http://privatter.net/p/2828646

'Backup - SNJS' 카테고리의 다른 글

45 & 9 & 416 - 3P  (0) 2018.09.17
엠포스타 - 단절  (0) 2018.09.17
Posted by 까망베르 베베
Backup - SNJS2018. 9. 17. 02:45



꾸욱꾸욱 짓누르듯 얽어매는 손길, 휘돌며 감싸듯 느려졌다 격정을 딛고 도약하는 손짓. 본능과 이성의 완벽한 통제 하에 기계와 같이 춤추는 손가락은 때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부드러웠다가도, 야수의 발톱과 같이 날카롭게 치솟아 올랐다. 계산적인 완급 조절에 흐름을 탄 몸은 자아를 잃고 풍랑에 떠밀리는 조각배가 되어 밀리면 밀리는 대로, 당기면 당기는 대로 파도를 따라 요동친다. 그 어디에도 자신의 의지는 없다. 그저 숨 죽이고 감내하는 고철 덩어리. 부자유의 피식자. 그녀가 넋을 잃고 그저 제 안을 휘젓는 힘에 맥없이 들썩거리기만 할 때에, 돌연 상대가 그 흐름을 깨트렸다. 곧게 펴져 내벽을 쓸던 손가락은 굽어진 채로 원을 그리기 시작한다. 잔뜩 젖어든 질 입구를 감싸고만 있던 손바닥이 피부를 꽉 눌렀다가, 여린 살덩이를 부드럽게 쓰다듬듯 풀어졌다. 

갑작스런 행동의 변화에 그녀의 몸이 한 차례 무너졌다. 몸을 지탱하던 다리가 바들거리며 떨리고, 자연스럽게 허리가 굽었다.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온 몸을 물듯이듯 차올라오는 뜨겁고 느린 물살. 척추가 불거져나온 맨 몸을 힘없이 내맡기며, 그녀가 내내 참아왔던 한숨을 내뱉었다. 마치 신호탄과도 같았다. 한 번 숨을 뱉는 것만으로 그녀는 간신히 참아왔던 감각에 전신을 먹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쉬이, 숨 들이마셔요. 입술 깨물지 말고."

"…시끄러워."

기껏 찾아온 배려를 쳐냈기 때문인가? 상대가 재게 놀리던 손을 멈췄다. 머리 위에서 웃음소리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희미한 바람소리가 울렸다. 기분이 편치 않은 모양이네. 남 일 생각하듯 하며,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상대와 셀 수 없이 몸을 섞었기 때문인지 그녀는 이제 상대의 숨소리만 듣고도 그 기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저 좀 볼래요, AR 15?"

"……." 

"…왜 굳이 힘든 길로 들어가는 거예요?"

"……."

침묵으로 일관하자 상대가 자비없이 그녀, AR 15의 목을 틀어잡았다. 그리고 손아귀 힘으로 그 목을 조이며 강제로 고개를 들어올린다. 어차피 저항없이 이끌려 갈 거면서. 스스로 자조하며 눈을 뜨고 AR 15는 온전히 제 상대를 마주했다. M4, AR 소대의 리더. 부드럽고 무른 것 같지만 사실 M4A1의 안에는 잠재된 흉포성이 있다는 것을 안다. 때로 지배자와 같이 군림하는, 제 목줄을 쥔 인형. M4가 AR 15를 흝는다. 냉막하게 식은 눈으로 관찰하듯 온몸을 쓸어내렸다가, 종착역에 이르러 다시 AR 15의 얼굴로 돌아왔다.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잔정이 전혀 묻어나지 않는 그 시선은 사실 AR 15만이 알고있는 M4의 이면이다. 잔뜩 흥분해 짓쳐들어와 저를 마구 범하는 M4, 목을 조른 채 알 수 없는 눈으로 저를 내려다보는 M4, 그녀의 모든 의지와 자긍심을 흙발로 짓밟고 유린하는 지배자 M4, M4, M4.

…M4, 난 네가……

"…할 만큼, 하…, 했잖아." 

실제로 그랬다. 또 어디에서 기분이 상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상처받은 얼굴로 제 방문을 두드렸던 M4를 기억한다. M4는 정오 즈음에 찾아와선 가타부타 한마디 말도 없이 AR 15을 밀쳤다. 그렇게 침대 위에 힘없이 쓰러진 채로 성난 손길에 따라 제 몸을 비트는동안 어느 새 해가 져버렸다. 한 번 불이 붙은 M4는 말릴 수도 없고 애원을 해도 듣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이 정도로 이유없이 상대를 몰아붙이는 성미는 아니었다. 정말 노리개가 된 것과 같아서, AR 15는 잔뜩 상한 목으로 결국 힘없이 말을 뱉었다. 되도록이면 이런 아쉬운 소리 같은 거 하고싶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로 폭풍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일이었는데.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아. 

M4가 희미하게 웃었다. 아니, 웃지 않았다. 입꼬리는 미소 짓듯 올라갔지만 그 눈은 차갑기만 하다. AR 15는 가끔 M4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었다. 주로 지금과 같은, 이런 눈으로 자신을 응시할 때. M4의 한 손은 제 숨통을 틀어잡고 있지만 나머지 한 손은 여전히 AR 15의 안을 헤집고 있다. 잠시간의 휴식은 꿈이었다는 것처럼, 곧이어 M4의 손가락이 다시 AR 15의 안을 짓뭉개기 시작했다. 성난 들소처럼 직선으로 크게 곧게 솟구쳐 올랐다가, 뱀의 꼬릿짓처럼 매끄럽게 아래로 흘러내린다. 잔뜩 긴장해 요동치는 AR 15의 섬세하고 정밀한 인공피부, 숨 가쁘게 떨리는 근육과 솟아오른 힘줄들, 뼛대를 음미하면서. 잠깐 쉬었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는 지도 모른다. 밀려나갔던 파도가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물살과 함께 닥쳐들어온다. AR 15는 제 떨리는 몸이 곧 난파당해 휩쓸려 날아갈 것을 직감했다. 발끝부터 종아리, 허벅지, 둔부와 허리,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모든 신체가 불에 달궈진 것처럼 뜨거워졌다. 아, 아. 그녀의 가장 깊은 안에서 또아리를 튼 뱀이 머리를 치켜들었다. 그 몸을 활짝 펼치고, 샛노란 눈을 번뜩이며 제 입을 벌린다. 그리고는 그 날카로운 독니로,

"…아, 흣…!" 

"신기하지 않아요, AR 15? 왜 인간은 인형에게 이런 감각을 준 걸까요."

"…하, 아……뭐, 읏……."

"진짜 같은 피부, 이 온기, 촉감들. AR 15는 알아요? AR 15의 안……."

박차를 가하는 손짓과는 달리, M4가 읊조리듯 나지막한 어조로 속삭였다.

"…정말 좋아요." 

AR 15의 귀로 그 목소리는 분명히 흘러들어갔지만, 그녀는 그 말에 어떠한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잔뜩 억눌려진 신음과 비명을 단말마처럼 내뱉은 후, M4의 품으로 맥없이 고꾸라지고 있었으니까. M4가 제 품 안에서 경련하는 가련한 이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즐겁지만은 않은 웃음이 그 입가에서 줄줄 새어나온다. 마치 비웃는 것도 같은 씁쓸한 잔웃음을 흘리면서 M4가 입을 열었다.

"쉬어요." 







*






M4는 거칠게 손바닥을 비볐다. 손가락을 뽑아 없애버릴 듯이 강렬하게 씻어내리면서, 제 손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를 털어냈다. 아직도 잔향이 남아있는 것만 같다. 깨끗하게 씻어 없앤 AR 15의 향. 손바닥을 펴 제 코 밑에 댄다. 크게 숨을 들이마쉰다. 깔끔한 비누향이 났다. 힘없이 웃으면서 문고리를 잡아돌렸다. 어둑어둑한 묵빛 방이 보인다. 희미하게 새어드는 달빛 아래로 잔뜩 흐트러진 이불과 침대가 드러난다. AR 15의 자켓과 원피스가 침대 밑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옷을 주워 적당히 개켜놓았다. 주인을 닮아 삭막한 방이라 옷가지를 걸어놓을 가구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서늘한 찬기운이 든다. M4는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침대 옆에 소리없이 걸터앉아 난잡하게 흐트러진 이불을 손에 쥐었다. 아무렇게나 쓰러져있는 AR 15가 멍한 눈으로 M4를 올려다본다. 바로 좀 전까지 자신의 아래에서 쉼없이 들썩였던 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미동없는 얼굴이다. 총기없이 깜빡이는 눈은 그저 M4의 모습만을 쫓는 듯 하다가 곧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녀의 피부는 억센 손길에 잔뜩 부르터있을 것이다. 할퀴어지고, 빨려지고, 물린 상처가 찬공기에 시릴 법도 하지만 AR 15는 고통에 몸을 숙이지도 않는다. 그 몸에 이불을 덮어주고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잠든 듯이 고요한 AR 15의 뺨을 어루만지고, 그녀의 분홍빛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한올한올을 손가락으로 헤아리면서, 자그마한 귓볼을 어루만졌다. 

"…하지 마."

"그럴게요."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좋았을 텐데 대답한 것은 AR 15의 반응이 보고 싶어서이다. 관계가 끝난 후 맥없이 쓰러진 AR 15는 감정없는 기계와 같은 태도로 M4를 대한다. 그녀가 힘없이 쓰러져있는 모습보다는, 차라리 저항하는 모습이라도 보는 것이 좋다. 좋아. AR 15를 가지는 것은 정말 최고이지만, 사실 AR 15가 저항하는 것도 보기 좋다. 뭐든 그녀의 감정이 보였으면 좋겠다. 정립하기 힘든 양가감정에 M4는 소리없이 자조했다. 영원히 이해받지 못하고 용서받을 수 없는 감정이라는 것을 안다. 저항하지 못하는 자를 찍어누르는 것이 악행이라는 것도 알아. 하지만, AR 15를 놓아줄 수는 없다. 아니, 사실은 못 하는 것 뿐이다.

M4는 천천히 침대에 들어섰다. M4가 눕자마자 AR 15가 곧 등을 돌린다. 그리고는 고슴도치처럼 제 몸을 끌어안고 적대하듯이 가시를 세웠다. 가끔은 말 한마디보다 작은 행동 하나가 더 큰 의사를 대변하기도 한다. 가장 하고싶은 말을 제 안에 품으면서, M4가 손을 뻗었다. AR 15의 맨허리를 꼭 끌어안고 그 뒷목에 제 입을 맞췄다. 거부하면서도 거부하지 않는 그녀가 좋다. M4의 앞에서 심란해지는 AR 15가 좋다. 자존심 강하고 유능하지만 M4 앞에서는 나약한 그녀가 좋다. 그녀는 해가 뜨면 또 별 일 없었다는 듯이 제 총기를 점검하고 있을 것이다. 수면모드가 끝나 이제 막 정신을 차리고 있는 M4를 아무렇지도 않게 쳐다보면서, 다음 지령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것이다. 역시 AR 15, 난 당신을…….

"잘 자요." 

그리고, 미안해요.






- 17.09.05

'Backup - SNJS' 카테고리의 다른 글

45 & 9 & 416 - 3P  (0) 2018.09.17
로스타 - 관계의 재정의  (0) 2018.09.17
Posted by 까망베르 베베